사과성명은 진의와 개선의 의지가 담겨져야 한다. 뭣보다 중요한 것은 그 뜻이 실현되어 다시 사과성명을 낼 필요가 없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과성명은 단순한 선언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성명은 오히려 이해와 용서를 얻는 것보다는 불신을 사기 쉽다.한국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이 3일 회장단일동의 이름으로 대국민사과성명을 냈다. 이 성명은 「우리 기업인들은 떳떳지 못한 정치자금문제로 야기된 최근의 사태에 직·간접으로 관여되어 있는데 대해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고 말하고 「앞으로 우리기업인들은 어떠한 경우이든 어떠한 명분이든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임을 재삼 다짐하고자 합니다」라고 했다.
이 선언처럼 우리 재계가 정경유착의 고리를 차제에 단절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나라를 명실공히 세계선진화의 대열에 도약시키는 위대한 성취가 되는 것이다. 5천억원(약6억2천만달러)의 천문학적인 숫자에 달하는 노태우전대통령의 불가사의한 비자금사건으로 전세계앞에 웃음거리로 실추된 국가와 재계의 이미지가 만회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경제기적을 이룩한 우리나라가 정치·도덕의 기적까지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정경유착의 단절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가. 전경련이 정경유착과 관련하여 자정선언을 한 것은 그 자신이 창설된 61년 4·19학생혁명이후 4번째다. 재계의 성명 하나로 정경유착이 증발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정경유착이 정치권과 재계 양측의 밀실거래에서 이뤄지듯 그 단절에도 양측의 단호한 결의가 요구된다. 재계의 마음이 굳어도 정치권 특히 집권세력이 동조하지 않는다면 끊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재계 자체가 한 마음이 되는 것도 현실적으로 극히 어렵다. 재계는 이해관계가 부단히 상충된다. 더욱이 우리 기업들은 지금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정경유착의 형태로 성장의 기회를 잡았고 그것이 체질화돼 있다. 뿐만 아니라 선단식경영으로 서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또한 재계 상호간의 음해도 자심하다.
재계는 우선 스스로 경쟁윤리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협력해 줘야 한다. 재계는 공동의 위협앞에서는 단결력을 보인다. 공동의 경쟁규칙을 만들거나 지키는 데서도 상호협력을 보여야 한다. 단결된 힘으로 정치권에 대응할 수 있는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 음성적인 정치자금에의 비협력이 관행으로 정착돼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또한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강화, 정경유착 단절의 장치를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감시·감독 또한 강화돼야 겠다. 총체적인 합의와 노력없이는 재계의 정경유착 단절선언은 또 하나의 선언으로 끝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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