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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선진국 문턱서 좌절한 나라들/“추락의 주역은 부패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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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선진국 문턱서 좌절한 나라들/“추락의 주역은 부패권력”

입력
1995.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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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군부세력­세계6위 부국 졸지에 남미 빈국 자초/파나마 노리에가­「아메리카 홍콩」 비약 기회 무참히 뺏어/필리핀 마르코스­천혜의 자원불구 「가정부의 나라」 전락세계 어느 나라라도 도약의 기회는 찾아온다. 이 호기를 잘 잡아 선진국 진입의 기회로 살릴 수 있느냐 여부는 지도자의 영민함에도 달려 있다. 반면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절해버린 나라의 경우 대부분이 사리사욕에 눈먼 부패권력이 정점에 있었음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황폐한 유럽의 「식량창고」로 불린 아르헨티나가 우선 대표적 사례이다. 「쇠고기를 가득 채우고 대서양을 건너간 냉동선이 돌아올 때는 같은 무게의 돈을 싣고 온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계의 부를 긁어 모으던 아르헨티나는 당시 1인당 국민소득 세계 6위, 무역규모 세계 10위라는 초우량 국가였다.

그러나 정정불안과 더불어 연속된 절대권력의 등장은 나라를 끝없는 나락속으로 빠트리고 말았다. 군부집권세력들은 국민에게 환원돼야할 국부를 좀먹어들어갔다. 기득권 유지를 위해 정적을 좌파로 모는 인권탄압도 서슴지 않았던 부패권력들은 결국 집권연장을 위해 82년에는 말비나스(포클랜드)를 둘러싸고 영국과 영토분쟁을 일으킴으로써 나라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갔다.

83년 알폰신 민선정부가 들어서며 겨우 암흑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왔지만 남은 것은 빈껍데기뿐이었다. 외채는 눈덩이 처럼 불어나 있었고 한때 지구를 먹여살리던 국민들은 배고픔때문에 거리로 뛰쳐나와 약탈을 자행했다.

다시 성장 궤도에 진입한 것은 89년 카를로스 메넴 현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부터이다. 이때 주목되는 점은 군정이양기의 과도기적 알폰신정부가 엄두도 못냈던 과거청산 작업이다. 3명의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과거 군정의 관련자들을 사법적으로 단호히 처리함으로써 국민화합의 계기로 삼았다. 이를 발판으로 추진력을 갖기 시작한 아르헨티나 경제는 90년부터 94년까지 4년간 중국과 태국에 이어 세계 세번째로 높은 30%이상의 초고속 성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중남미 전체를 태풍권에 끌어넣었던 멕시코 페소화 금융위기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건실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초고속 성장에도 불구하고 그사이 벌어졌던 이웃 라이벌 브라질과의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운하등 천혜의 지리적 이점을 안고 있는 파나마의 좌절도 이에 해당한다. 국제적인 무역중계및 금융중심지로서 「미대륙의 홍콩」으로 비약할 기회는 마누엘 노리에가의 등장으로 날개를 접고 말았다. 파나마의 경우는 미국이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조차하고 내정에 간여하는 등 전형적인 「종속이론」의 틀로서 진단할 수도 있지만 지난 83년 군부실세로 등장,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노리에가 장군등 위정자들의 사욕 추구행태가 낙후의 주요인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89년 마약관련 혐의로 미국에 강제연행되기 전까지 노리에가가 착복한 금액만도 10억달러에 달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가 채 안되는 국민(인구 250만명) 한사람당 400달러씩을 강취한 셈이다.

이러한 「악운」은 필리핀에서도 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인적자원과 천연 자원을 갖고 있던 「1등국」필리핀은 마르코스 전대통령의 20년 장기집권을 거치면서 「가정부의 나라」라는 오명을 듣는 신세로 전락했다.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가 최근 마르코스의 돈을 국가에 헌납, 필리핀의 모든 외채를 갚겠다고 호언한 것으로 미뤄 그 축재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이전의 동구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루마니아가 전형적인 예이다. 탄탄한 경제기반과 풍부한 농산물로 굶주림을 모르던 루마니아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집권기를 거치며 동구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최근의 사례는 멕시코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등과 함께 일어난 경제 붐으로 일약 선진국 진입의 꿈에 부풀어 올랐던 멕시코는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유력시 되던 카를로스 살리나스 전 대통령과 에르네스토 세디요 현정권의 권력형 비리가 잇따르며 일시에 그 꿈이 사그라들고 말았다. 외국 투자 열기가 급속히 냉각되고 페소화 금융위기가 번지며 터널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윤석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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