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이래 가장 추악하고 규모가 큰 것으로 드러난 전직대통령의 축재비리가 과연 어떻게 처리될지 온 국민의 관심은 한 군데로 쏠려 있다. 그토록 국민의 관심이 고조된 데에는 노태우씨의 축재방법이 교활한 데 따른 비난의 소리와 더불어, 여러 차례 거짓말을 되풀이하며 국민을 속인데 대한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시중에는 전직대통령의 숨겨둔 비자금이 수천억원에 이른다는 소문이 떠돌아 다녔다. 이런 소문을 전해 들은 선량한 국민은 노태우씨측의 『그런 일이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법적 대응으로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단호한 부인을 진실한 것으로 믿고 안도하곤 하였다. 나중에는 구체적 물증을 제시하며 위 문제를 폭로한 박계동의원의 주장마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이다가 급기야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자 그제서야 마지 못해 숨겨둔 돈을 실토하였다.노씨는 국민에 대한 사과성명에서 기업으로부터 수천억원의 돈을 거두어 들인 것이 「과거의 관행」이니 또는 「통치자금의 조성」이라는등 해괴하고 황당한 어구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려 들었다. 결국 노씨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이 나라의 국정을 올바로 수행하도록 위임한 주권자인 국민을 여러 차례 기만하고 우롱하고 배신한 셈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철칙규정을 마구 짓밟은 것이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아무리 순하고 정에 약한 우리 국민들이라도 이제 더 이상 참을래야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통령직에 재직하면서 기업의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수백억원의 돈을 바치도록 한 행위는 아무리 변명해도 실정법에 위반되는 명백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이런 돈은 결코 통치자금이라고 부를 수 없다. 엄격히 말해 통치자금은 국가의 통치행위에 직접 소요되는 것을 뜻하며 예산에 따른 지출행위여야 한다. 정당운영이나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하는 돈은 통치자금이 아니다. 설령 정치자금으로 받았다고 변명해도 법률의 절차에 따르지 않는한 위법임을 면할 수 없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후에도 차명으로 천억원이 넘는 거액의 돈을 숨겨두고, 그런 일이 없노라고 시치미를 뗀 노씨의 행위로 보아 이는 개인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부정축재라는 낙인을 벗어날 길이 없는 것같다. 정확한 법률적 평가는 사법기관에서 판단할 것이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일련의 노씨의 행위가 실정법에 위반되는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이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하게 축재하는 행위는 공직사회의 부패를 유발하고 정격유착의 폐습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므로 국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어느 범죄보다도 큰 것으로 단정한다.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은 사회정의를 훼손하고 공정한 경쟁을 침해함으로써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경제성장의 잠재력을 침식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유형의 범죄는 개인의 법익을 침해하는 일반 형사사범보다도 더욱 가혹하고도 엄정한 법의 제재를 받도록 해야 한다. 이런 유형의 범죄를 엄정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다시 이런 비리가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부정부패가 만연되고 불의가 정의를 짓밟으며, 상식이 억지에 밀려 사회가 서서히 붕괴될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이 그토록 바라는 민주주의의 발전이나 선진국대열에의 진입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동안 국민 모두가 땀흘려 이룩한 경제발전도, 값진 희생을 치르고 쟁취한 민주화도 하루 아침에 잃게 될지 모른다.
그런 뜻에서 노씨에 대한 처리가 어떤 모양으로 귀결되느냐 여부는 우리 국가장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라 본다. 전직대통령인 노씨 개인에게는 매우 안쓰러운 일이지만 그 행위의 엄청난 반사회적 성격과 국가에 끼친 해악의 정도에 비추어 마땅히 구속하여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떻게 부정부패를 추방할 수 있단 말인가. 규모는 작으나 과거에도 그런 비리가 있었으니까, 또는 전직대통령이니까 하는 따위의 감상적인 동정론에 이끌려 적당히 넘기려는 생각은 아예 떨쳐 버려야 한다.
우리는 과거 정에 이끌려 정의의 편에 서서 맺고 끊는 결단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고 그저 적당히 넘기고 만 과오를 여러 번 되풀이한 일이 있다. 우리 민족의 고질적 단점이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정의를 바로세우는 용기와 결단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의식이 오늘날 부정부패를 확산시켰는지 모른다. 우리 민족의 의식구조에 잠재하는 「적당주의」의 폐단 때문에 사회의 기강이 해이하게 되고 공중도덕이 뒤떨어지고 민주화가 낙후된 것을 상기할 때, 이제야말로 새로운 결단이 필요한 시기이다.
노씨 사건의 처리를 지켜보는 세계의 언론은 벌써부터 정에 이끌려 적당하게 넘기는 우리 민족성을 들어 과연 노씨가 제대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그들은 이번 사건이 적당히 처리될 때 또 다시 한국민은 별 수 없는 민족이라고 조소할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하여 엄정하게 법의 심판을 내려 이제는 우리도 권력형 비리를 무작정 용서하지 않고 정의를 바로세우는 능력을 가진 국민임을 세계 만방에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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