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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통산성(한문화 원류기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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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통산성(한문화 원류기행:3)

입력
1995.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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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단 군사요충 고구려 힘찬기상 석벽에 서려있고…/만주벌 호령하던 20리 성벽은 「장백」의 기 이어『고구려는 산에 성을 쌓아서 갑자기 함락시킬 수 없다』, 『랴오둥(요동)은 멀고 군량미 수송도 어려운데 동이는 성을 잘 지킨다』 국운을 걸고 고구려정벌에 나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던 수, 당 지배자들의 탄식은 고구려의 견고한 산성중심의 방어체제를 입증한다. 구당서와 삼국사기에는 고구려가 멸망한 668년 당시 69만여호가 176개의 성에 분산돼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주로 큰 강 주변의 험준한 산악에 쌓은 성들은 독자적 군사시설이자 행정체계를 형성하는 기본단위로 수도 국내성을 겹겹이 호위하는 다단계 방어벽을 구축하고 있다. 이중 후이파허(휘발하) 상류지역의 나통(나통)산성은 북방의 최전방기지이며 환도산성과 국내성으로 이르는 요충이다.

수, 당과 대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은 없지만 위치와 규모로 미루어 핵심역할을 맡았을 것으로 추측된다.높이 2m이상의 석벽이 남아 있고 주변에 고구려무덤과 평지성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한때 수도였다는 설이 제기됐다. 지금도 나통산성은 사방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산성 북서쪽으로 10여㎞ 떨어진 메이허커우(매하구)시에서 북으로 지린(길림), 남으로 퉁화(통화), 서로 쓰핑(사평), 서남으로 선양(심양)이 단숨에 고속도로로 연결된다.

상오 6시 선양을 출발한 일행은 10여시간만인 하오 4시30분께 산성입구에 도착했다. 100년만의 대홍수로 뭉턱뭉턱 잘려나간 길과 끊어진 다리를 돌아가느라 예상보다 3시간 이상 지연됐다.

81년 지린성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된 나통산성은 92년부터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다. 류허(유하)에서 산성입구까지 대형버스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나 있고, 입구에서 성터가 있는 정상까지 지프로 오르는 길이 있다. 깎아지른 듯한 서쪽 절벽을 끼고 1시간여 동안 힘들게 오르자 커다란 분지형태의 서성내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지역 해발 960의 주봉에 위치한 산성은 동서로 두 개의 성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둘레가 7.5㎞나 되는 대규모 성이다. 서성이 동성보다 웅장한 주성이며 동성은 인구를 분산시키거나 물자를 저장하고 가축을 기르던 곳으로 추정된다.

서성에는 말 달리며 무예를 연마할 수 있을 만한 공간과 200여평 규모의 타원형 연못, 초대소(여관)와 관리소로 쓰이는 10여 채의 건물이 있다. 100여 군데서 흐르는 샘물이 모여 이루어진 「용담(용담)」은 동해에까지 수맥이 이어진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30대 초반의 관리원은 『봄이면 살구꽃 진달래가 만발해 향기가 진동하고 연못에서 피어오르는 자욱한 안개가 비경을 이룬다』고 자랑했다.

정상부근에서 내려다보면 더욱 절경이다. 장백산맥에서 뻗어나온 용강산맥의 북부지맥에 속하는 이 지대는 산세가 험하고 후이파허의 양대 원류인 싼퉁허(삼통하)와 이퉁허(일통하)가 산의 양측 날개를 거쳐 북쪽으로 굽이쳐 흐른다. 동북 양면으로는 하천이 넘쳐 충적된 기름진 벌판에 옥수수와 콩, 수세미등 작물이 끝없이 이어지며 서쪽으로는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100리를 달리고 있다.

압록강유역에서 멀지 않은 이 지역은 독립군이 광복의 꿈을 키웠던 무대다. 김동삼 지청천 장군등이 참여했던 독립군부대 서로군정서와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가 자리잡았던 항일투쟁의 근거지에는 일제도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 하산하기 시작한 일행의 귀엔 만주벌판을 주름잡던 고구려무사들과 구국의 열정으로 일제와 맞섰던 독립군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최진환 기자>

◎고구려 산성의 특징/강 낀 험한 산위에 훈련시설 갖춰/평지의 성과 연계해 유사시 대비

고구려가 수, 당의 백만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가지이지만 산성을 활용한 적절한 방어전략도 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만주지역은 드넓은 벌판과 함께 높고 험한 산악지대가 많아 공격보다 방어하기가 수월했다.

학자들에 의하면 고구려산성은 3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는 큰 강의 물줄기를 따라 주변의 험준한 산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특히 지형상 3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가운데 위치한 높은 산에서 점차 낮아지는 형태로 돼 있다. 곡식을 까불러 낟알을 고를 때 쓰는 농기구인 키모양의 고로봉형이다. 신라 백제의 성은 산꼭대기에 띠를 두른 형태의 「테메식」이고 수와 당의 성은 대부분 평지에 세워진 방형이었다.

둘째는 장기전에 대비, 성안에 군사를 집결·훈련시킬 수 있는 일정규모의 연병장, 평지와 연못, 샘물, 하천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평지의 성과 연계되어 유사시에 주민들이 산성으로 옮겨가 전투체제로 돌입할 수 있게 돼 있는 점이다. 지안(집안)의 환도산성과 국내성, 평양의 안학궁터와 대성산성이 전형적인 예이다. 고구려는 많은 식량을 쌓아둔 산성 안에서 적이 활동하기 힘든 겨울이 될 때까지 기다리거나, 적이 후퇴할 때 전후좌우에서 협공하는 작전을 취했다.

◎작가 메모/강건호씨/산봉우리들은 파도처럼 “넘실”

나통산성의 성벽까지 오르는 길은 무척 가팔랐다. 지프가 다니는 길이 있었지만 차가 없는데다 시간도 촉박해 오솔길을 따라 걸어올랐다. 참나무, 가죽나무, 아카시아, 싸리나무등 잡목들 사이를 40여분쯤 오르니 2m 이상의 높이로 길게 뻗은 성벽과 서문이 보였다.

서문 왼편으로는 와호정으로 오르는 길이 있었다. 산봉우리가 범이 엎드린 형상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성내부까지는 걸어서 20분가량 더 올라가야 한다. 성을 둘러보고 다시 이 자리에 서자 석양노을과 함께 옅은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서쪽편으로 달려나가는 희미한 봉우리들은 출렁이는 파도 같았다.

□약력

▲45년 안동 출생

▲서라벌예대 미술학부

▲국전 입선 4회

▲서울아카데미·신작전·신미술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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