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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무를 잘라버렸나(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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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무를 잘라버렸나(장명수 칼럼)

입력
1995.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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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양재천을 따라 양쪽으로 길게 조성된 산책로와 공원은 인근 주민들에게 오아시스같은 장소다. 남녀노소가 그곳에서 산보를 하고, 조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피크닉을 하면서 도시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풀고있다.공원에 자주 나오는 사람들은 서울시의 공원관리에 대해서 항상 고마워 하고, 세금내는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가는 나쁜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공원은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나무와 꽃을 가꾸고, 여러가지 운동시설을 갖추는등 세심한 손길이 느껴지곤 한다.

10월의 어느날 공원에 나갔거나 공원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여름내 무성한 녹음을 자랑하던 플라타너스 숲은 간곳이 없고, 가지를 모조리 잘린 벌거벗은 나무들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놀라서 공원에 나간 사람들은 군데군데 나무를 베어내기까지 했다는 것을 발견하고 분노했다. 아파트가 들어서던 십여년전부터 아기나무가 의젓하게 자라는 것을 지켜보았다는 한 부인은 잘려나간 이십여그루의 나무등걸을 헤아리면서 눈물을 흘렸다.

주민들의 항의를 받고 현장에 나와본 구청 담당자는 나뭇가지를 치던 인부들이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아파트 주민들중에 플라타너스 숲이 시야를 가린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 말을 듣고 가지를 심하게 치다가 아예 군데군데 잘라 냈다는 해명이었다. 솎아내야 할 나무가 있으면 잘 뽑아서 반드시 다른곳에 이식해야 하는데, 일을 잘못했다고 그들은 사과했다.

요즘 공원에 나간 사람들은 차마 플라타너스 숲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곳은 일대 살육전이 벌어졌던 전쟁터 같다. 토막난 나무등걸들이 곳곳에 시체처럼 뒹굴고 있다. 십여년 키운 나무들을 어떻게 실수로 잘라버릴 수 있단 말인가. 나뭇가지를 치러 다니는 인부들이 나무에 대한 애정도 지식도 없이 전기톱을 들이대고 있다는 사실에 주민들은 새삼 충격을 받고 있다.

플라타너스의 참혹한 죽음을 보면서 용산공원을 생각하곤 한다. 오십여년간 미8군의 영내였던 그곳이 개방되었을 때 우리는 잡목 한그루까지 소중히 키운 그 아름다운 숲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의 어느곳에도 남아있지 않은 옛 야산의 모습이 고스란히 그곳에 있었다. 손대지 않은 잡목숲의 아름다움에 많은 사람들이 새삼 자연의 소중함을 생각했다.

나무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나무에 대해서 좀더 공부를 하고 애정을 가져야 한다. 베어버린 나무등걸을 매만지며 눈물흘리는 부인의 마음, 잘려나간 나무등걸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는 주민들의 아픔을 깊이 새겨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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