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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계좌 90년전후 개설한듯/노씨 비자금 조사­해외재산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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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계좌 90년전후 개설한듯/노씨 비자금 조사­해외재산 의혹

입력
1995.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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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돈 본거지 제네바에 예치유력/암호거래 사설은 이용땐 추적 난망『노태우 전대통령의 스위스 비밀계좌는 어디에 있고 어떻게 관리돼 왔을까』

노태우씨 부정축재비리를 수사중인 검찰이 해외은닉재산, 특히 스위스은행 비밀계좌 존재에 대한 심증을 굳히고 본격 수사키로 함에 따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스위스의 금융중심지인 취리히 은행가와 교민사회에서도 노씨의 비밀계좌 존재여부가 중대 관심사가 되고 있는데 일단 비밀계좌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게 정설이다. 스위스 금융관행등을 토대로 이곳에서 제기되는 가능성을 종합구성해 본다.

두가지 가능성으로 압축된다. 첫째는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스위스의 대형 시중은행이고 다른 하나는 일종의 투자신탁회사인 소규모 사설은행이다. 「유니언뱅크 오브 스위스(UBS)」 「스위스뱅크 코포레이션(SBC)」등으로 대표되는 대형 시중은행들은 91년 정부가 계좌실명제를 도입하기 전까지 「눔머룬 콘토」라는 비밀계좌를 운영했다. 이 계좌는 개설시 예금주의 신원확인을 요구하지 않고 고유번호만으로 입출금 거래를 하도록 돼있어 일명 「숫자코드계좌」라고도 불린다. 스위스정부는 「검은 돈의 천국」이라는 국제적 비난이 거세지자 이 제도를 폐지했으나 상당부분 예외를 인정, 아직도 암호코드로 남아 있는 계좌가 적지 않으며 많은 은행들이 비밀계좌를 담당하는 개인예탁금 특별관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거액의 비자금을 은밀하면서도 안전하게 은닉해야 하는 노씨에게는 1백년이상의 역사와 국제적 신뢰도, 탄탄한 경영력을 갖춘 이런 대형 시중은행이 든든해 보였을 것이다. 특히 이 은행들은 국제적 지점망을 갖추고 있어 차세대전투기선정, 원전의 해외발주등과 관련해 엄청난 리베이트가 생겼을 경우 국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송금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설은행을 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스위스 전역에 1백20개에 달하는 사설은행은 규모는 작지만 비밀유지 면에서 시중은행보다 휠씬 안전하다. 사설은행들은 정부의 감독감시망에서 한발짝 벗어나 있어 지금도 여전히 숫자암호거래나 차명거래가 성행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림암호를 쓰기도 한다. 전주 입장에선 통장이나 계약서등 종이 쪽지 한장 없이도 암호만으로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만약 노씨가 이 방식을 이용했다면 스스로 또는 하수인이 입을 열지 않는 한 계좌추적이 거의 불가능하다.

사설은행은 그러나 파산사례가 심심치 않는등 위험이 따라 「소심한」 성격의 노씨가 이를 택했을 지 의문시되지만 롬바드오디에은행같이 2백년 가까운 역사와 국제 지점망을 가진 전통있는 사설은행도 상당수 있다. 이밖에 스위스에서 활동하는 외국계은행과 주립은행등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노씨가 대형 시중은행과 전통있는 사설은행등 2∼3곳을 골라 은닉자금을 분담 예치했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비밀계좌가 스위스내 어느 지역에 개설됐을까 하는 의문과 관련, 이곳에서는 제네바 취리히 루가노순으로 꼽고 있다. 제네바는 금융중심은 아니지만 비밀계좌를 취급하는 대형시중은행들의 지점이 모두 있고 특히 알짜배기 사설은행들이 거의 이곳에 본점을 두고 있을 정도로 「검은 돈의 본거지」라는 점에서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취리히는 스위스의 대형 시중은행들이 몰려있는 국제적인 금융도시이나 비밀계좌위주의 사금융시스템이 제네바만큼은 못해 비자금은닉장소로는 이용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평이다. 스위스 남부의 루가노시도 대표적인 사금융 번성지인데 이탈리아 마피아들의 검은 돈이 대거 숨겨진 곳으로 유명하다.

비밀계좌 개설시기는 90년 전후가 유력시되고 있다. 노씨는 89년11월 유럽4개국순방중 이례적으로 스위스를 비공식 방문한 바 있으며 시기적으로도 임기중반에 들어서 비자금이 쌓여 관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 이때쯤 계좌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비밀계좌를 개설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실제 전주가 은행에 가지 않고도 대리인을 내세워 은행측과 계약서를 체결하면 되고 계좌명도 대리인 또는 차명을 쓰거나 가공인물을 갖다 대기만 하면 된다. 때문에 노씨가 자기 이름을 노출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따라서 가족등 주변사람의 이름을 빌렸을 가능성이 크다. 이중에서도 노씨의 딸 소영씨가 90년 2월 스위스은행에서 나온 20만달러때문에 미국에서 기소됐던 사실과 관련, 스위스 비밀계좌가 소영씨 명의로 됐을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야당에서도 이같은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노씨가 5공때부터 올림픽 관계의 일을 봤고, 스위스 로잔에 국제올림픽 본부가 있는 점을 들어 더 일찍부터 계좌를 갖고 있었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예치금액은 계좌개설이후 계속 늘려갔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거액의 현찰을 들고 스위스를 오가는 것이 위험스러울 뿐만 아니라 스위스은행측에서도 계좌실명제이후 현찰을 꺼려 은행간 해외 입·송금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비밀계좌는 거의 신탁계정방식으로 운용되는데 은행의 투자전문가에게 자금운용을 일임하거나 전주가 직접 투자대상을 지정한다. 노씨 계좌는 은행에 관리를 맡기되 결정적인 때는 직접 투자에 나서는 방식으로 운용됐을 공산이 크다. 예를 들어 자신의 지위를 십분활용, 계좌를 관리하는 은행을 통해 한국 주식에 투자해 수익을 극대화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금괴나 해외부동산에 투자했을 수도 있다.

비밀계좌의 관리자로는 이현우 전경호실장, 이원조씨, 노씨 친인척등이 1차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인사들이 스위스를 방문한 적이 거의 없었던 점을 들어 6공 당시 스위스에 주재한 정부기관 관계자나 유럽지역에 지사망을 두고 있으면서 노씨와 특수관계에 있는 재벌기업 관계자, 미국등에서 활동하는 한인 변호사등이 밀명을 받았을 가능성도 교민사회에서 거론되고 있다. 물론 이곳 교민이 심부름을 했을 가능성도 있으나 교민사회가 워낙 좁고 비밀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취리히=송태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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