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의 모든것 인수인계” 숙명/전씨 “안타깝다”… 불똥튈까 신경노태우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한 1일 전두환전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7년전인 88년11월23일 백담사로 떠나던 전씨를 바라보며 품었던 노씨의 생각과 어떻게 달랐을까. 불과 2백여 떨어진 곳에 살고있는 두 사람은 숙명적이랄 정도로 영욕의 모든 것을 인수인계했다.
전씨가 백담사로 떠나던 날 노씨는 청와대집무실에서 TV를 통해 연희동집을 나서는 전씨부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자리에는 당시 홍성철 청와대 비서실장 최병렬 정무수석 박철언 정책보좌관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는 TV를 지켜보다 휴지로 눈언저리를 닦기도 했다는 것이 이들중 한명의 증언이다.
노씨가 검찰에 출두하는 장면을 전씨가 지켜보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전씨의 비서관들은 이날 전씨가 아침 일찍 외출했다고 말했다. 집안 모임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노씨가 출두하기 전에 집을 나섰기 때문에 TV를 볼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씨의 다른 측근들은 전화연락이 되지 않았다. 노씨 출두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려는 눈치가 역력했다.
전씨측은 이번 비자금파문이 진행되는 동안 줄곧 공식반응을 피한 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같은 조심스런 입장은 5·6공 사이의 미묘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 전씨측은 노씨 개인의 문제라는 이번 파문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5·6공을 동일한 태생으로 보고있는 일반 국민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자칫 불똥이 튀지 않을까 긴장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전씨측이 무엇보다 신경을 쓰는 부분은 노씨와의 특수한 인간관계가 외부에 잘못 투영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지난 51년 육사입학때부터 관포지교를 유지하던 전·노씨가 5공청산을 계기로 견원지간으로 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세간의 인식속에서 섣부른 감정표현은 전씨측을 곤혹스럽게 만들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동안 전씨 주변인사들이 전해온 이번 파문에 대한 전씨 반응은 대체로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전씨가 7년전 느꼈을 수모와 배신감을 고려한다면 노씨의 이번 검찰출두는 전씨에게 남다른 감회를 불러일으켰을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갖는 감정을 전직대통령이라고 해서 느끼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전씨는 일단 「안타까움」이라는 표현속에 모든 감정을 녹인 것으로 보인다.
전씨가 백담사로 향하던 날 노씨가 보인 행동이 진실한 것이었는지 이중적인 것이었는지 알 수는 없다. 노씨의 출두에 대한 전씨의 정확한 감정도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40여년간 대통령직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자리를 끊임없이 인수인계한 두 사람은 마침내 치욕의 자리마저 주고받았다. 전·노씨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 역시 두 사람은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으로 기구한 인연이다.<정광철 기자>정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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