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조성액 기억 불가능”/이현우·이태진씨 진술까지 제시하며 집중추궁/노씨 자정넘어 완연한 피로기색불구 끝내 완강/“혼란우려 다 말할수는 없다”대검청사 1113호 특수조사실의 노태우 전대통령.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재직시절 비리혐의와 관련된 사실상의 「피의자」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 노씨는 1일 상오10시부터 2일 새벽까지 날카로운 신문을 받았다.
신문은 주임검사인 문영호 대검 중수부2과장과 김진태 대검연구관이 담당했고 내용기록을 위해 참여계장이 입회했다.
검찰은 이날 70여개의 기본 신문문항을 미리 작성했으나 실제 신문과정에서는 노씨 답변여하에 따라 수백여개 항목에 달하는 파상적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노씨는 핵심사안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나라를 혼란스럽게도 할 수 있는 사항을 다 말할 수는 없다』는 등 대답으로 피해 나갔다.
이날 검찰의 신문, 노씨의 답변내용을 관계자들의 이야기와 신문문항, 현재까지 드러난 사항등을 종합해 재구성해 본다.
▷인정신문◁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는데 이곳까지 오시느라 고생많으셨죠. 앉으시죠. 신문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성명은 노태우, 32년 12월2일생, 본적은 경북 달성군이고 현주소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1동 108의 17번지가 맞습니까.
『모두 맞습니다』
▷본격신문◁
―지난 27일 대국민 사과성명과 30일 검찰에 제출하신 「수사참고자료」를 통해 재임 5년동안 「통치자금」 5천억원을 조성하셨다고 했는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5천억원 가량을 조성하셨다고 했는데 정확한 조성액수가 얼마입니까. 또 재임연도별 조성액수도 말씀해주시죠.
『전체액수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연도별 조성액도 일일이 기록해두지 않아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성금을 제공한 기업인은 누구이고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됐으며 돈을 받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용도로 쓰셨습니까.
『개인적으로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밤낮없이 고생하는 기업인들에게 피해가 발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기업인의 이름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군전력 증강사업인 율곡사업과 기타 수서사건, 상무대, 원전수주등 대형사업때 특혜를 조건으로 한 모금이 있었습니까.
『기업인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냈을뿐 이를 대가로 특혜를 준 일은 전혀 없습니다』
(검찰은 그러나 이 부분에서 그간 비자금 계좌추적등을 통해 밝혀낸 특정기업의 자금제공과 그 액수 및 시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기업에서 언제 얼마를 받지 않았습니까』하는 식으로 신문을 진행, 노씨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뇌물수수혐의를 입증하려 했다)
―(예금통장을 보여주며) 제출하신 이 예금통장 11개는 잔액이 1천7백억원선입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왜 지금까지 갖고 계신지, 또 통장의 구체적 입출금 내역에 대해 알고 계신 것을 모두 말씀해 주시죠.
『돈을 남긴 것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구체적 입출금 내역은 제가 잘 알지 못합니다』
―이미 지출된 3천3백억원의 주요 사용처가 정당운영비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지출내역과 액수, 시기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대선등 선거자금내역은 국가에 자칫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취임직후 기자회견에서 전재산이 넉넉잡아 5억원선이라고 했습니다. 현재의 비자금잔액 외에 다른 사람 명의의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이 있으면 말씀해주시죠.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없는걸로 생각됩니다』
―스위스은행등 해외에 은닉한 재산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검찰은 노씨가 시종 부인하는 태도로 일관하자 하오부터는 분위기를 바꿔 관련자료와 이현우 전경호실장, 이태진 전경호실 경리과장등 관련자들로부터 확인한 수사내용을 제시하며 신문의 강도를 높였다. 특히 김진태 연구관으로부터 간간이 조사진전사항을 보고받던 안강민 중수부장은 『이러한 답변으로는 모처럼 전직대통령을 신문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 김기수 검찰총장과 숙의해 강도높은 내용의 추가신문내용을 문수사2과장에게 전달했다.
조사가 자정을 넘어 이어지면서 노씨는 완연하게 피로한 기색을 보였으나 문과장등의 설득에도 끝내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검찰은 그러나 노씨의 이같은 태도에도 불구, 수사자료와 노씨 진술상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비자금 조성과정에서의 불법성을 차근차근 확인해 나갔다.<현상엽·박진용 기자>현상엽·박진용>
◎노씨안 중수부장 13분 대화/“혼란 해소토록 협조부탁”안 중부장/“대통령지낸 입장서 답변”노 전 대통령
검찰에 소환된 노태우 전대통령은 대검청사 도착 직후 7층 중수부장실로 올라가 안강민 중수부장을 13분간 만났다. 노씨와 동행한 김유후 전청와대사정수석과 검찰측의 이정수 대검수사기획관이 배석한 이 자리에서 노씨는 검찰소환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심경을 비교적 솔직하게 피력했다. 노씨는 이 자리에서『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입장에서 조사에 임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조사실로 향했다. 다음은 노전대통령과 안중수부장과의 대화내용.
―노:『내 문제로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안:『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노:『새로 이전한 검찰청사의 환경이 좋은데요. 어떻습니까』
―안:『서소문에 청사가 있을 때보다 공기가 좋습니다』
―노:『이 청사는 대통령 재임중 내가 재가해 대법원과 함께 신축한 것인데 이 건물에서 내가 조사받게 되었습니다』
―안:『재임중 법조인들을 많이 중용하셨지요』
―노:『법조인들을 많이 중용하긴 했지만 (배석한 김전수석을 가리키며) 이 분들께 면목없게 됐습니다…』
―안:『오늘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지금 나라가 상당히 혼란한 지경에 있는데 깊이 생각하셔서 혼란을 빨리 해소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그쪽(검찰)은 그쪽대로 입장이 있겠지만 나도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고 조사에 임하겠습니다』<현상엽 기자>현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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