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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의 검찰출두를 보면서/양승규 서울대 법대교수(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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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의 검찰출두를 보면서/양승규 서울대 법대교수(특별기고)

입력
1995.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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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부끄럽고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땅에 군사정권이 들어선 3공부터 6공에 이르기까지 권력형 비리가 쌓여 눈덩이처럼 불어만 간 검은 돈의 정체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노태우씨가 대통령 자리에서 축적한 검은 돈의 액수는 보통사람들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도 없다. 풍문으로 떠돌던 노씨의 비자금 액수가 드러나면서 정치권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국민의 분노와 실망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개혁의지를 천명하고 성역없이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선언한 김영삼정권이 들어선 후 동화은행비리사건, 율곡비리사건등 굵직한 사건이 터져 나왔어도 정부와 검찰은 편파적인 수사로 그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감추는데 급급했다. 특히 상무대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에서 의혹을 푸는 열쇠인 서류의 검증, 수표의 추적도 정부의 협조가 없어 결국 꼬리를 감추는 추태를 보였음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지고 있다(헌법 제69조). 대통령은 국민의 공복으로서 강력한 권한과 특권이 주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의 안위를 위하여 헌신한 공로를 인정하여 퇴임한 후에도 전직대통령의 신분보장과 예우를 하도록 하고 있다(헌법 제85조). 이러한 대통령이 직권을 남용하고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였다면 이것은 어떠한 범죄보다도 그 질이 나쁜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나라는 불행히도 대통령을 지낸 분은 어느 누구도 국민적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은 하나도 부패의 혐의를 벗지 못하는 서글픈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5공 전두환정권의 폭압정치에 항거하는 국민의 저항을 이른바 6·29선언을 통해서 교묘히 누그러뜨리고 『이 사람 믿어 주세요』라고 국민에게 호소하여 민선대통령으로 당선되어 깨끗한 정치를 표방한 사람이 누구였던가? 그러한 보통사람 노태우 전 대통령이 5,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기업등으로부터 뜯어내어 이를 통치자금이라는 이름으로 쓰다 남은 돈을 차명계좌등으로 숨겨두고 있다가 그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 그가 취한 태도는 너무나도 뻔뻔스러웠다. 자신의 심복이라고 믿었던 경호실장이 신한은행의 차명계좌가 노씨의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자 들끓는 민심때문에 마지 못해 사과하고 용서를 청하고 있는 모습은 측은하기까지 하다.

노씨의 해명은 더 큰 의혹을 불러냈고, 그 후에 불거져 나온 친인척 명의 부동산의 보유의혹, 한보라는 기업을 통해서 실명전환한 금액등이 드러나고 있고, 죽을 고비에서까지 국민의 눈을 가리려는 정직하지 못한 그의 태도는 사법처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노씨는 전직대통령으로서 부패의 혐의로 처음으로 검찰의 소환을 받아 조사를 받는 기록을 남기고 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다.

노씨의 검찰수사와 관련하여 그를 구속해야 하느냐 아니냐를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대통령을 지낸 분을 어떻게 구속까지 할 수 있느냐는 사람이 있기도 하나 대통령 자리를 이용해서 그렇게 엄청난 축재를 할 수 있느냐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으로서 권한을 남용하여 기업으로부터 돈을 뜯고 각종 이권을 챙김으로써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사회의 부패구조를 심화시킨 행위는 반국가적인 범죄행위이다.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을 저지른 자는 「내부의 적」이며 외부의 적보다도 훨씬 더 국가를 파괴시키고 있음을 일깨워야 한다. 권한이 크면 클수록 책임도 무거워야 한다는 점에서 노씨를 구속하여 그가 저지른 모든 범죄사실을 철저히 파헤쳐 재판에 회부하는 것은 당연한 요청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부와 검찰은 그동안 갖가지 권력형 비리를 숨기고 국민을 속인 행위에 대해서도 솔직히 반성해야 한다. 검찰은 지난 날의 잘못을 보상하기 위해서도 노씨의 범죄행위 뿐 아니라 3공에서부터 이어온 권력형 비리를 철저히 가려내야 하고, 특히 외국으로 빼돌린 검은 돈을 찾는데도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제 또 다시 짜맞추기수사를 함으로써 검찰의 위상을 더럽히는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 정직한 정부로 태어나 사회정의가 되살아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를 간절히 빌고 싶다.

전두환전대통령이 부정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 국민에게 사과한 후 백담사로 떠나는 모습을 지켜 본 노씨가 그 엄청난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권은 물론 국민 모두가 심기일전하여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 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누가 12장 15절)는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새로이 태어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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