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가을은 어디나 그렇겠지만 뉴욕의 가을은 그 오고감이 유난히 급작스럽고 황망하다. 가을의 허리를 무지르는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는 가뜩이나 산란한 뉴욕의 가을을 더 어수선하게 만든다. 그런 한편 이 가을 속의 여름은 잔뜩 움츠러들었던 수은주의 키를 훌쩍 늘려놓으며 총총한 가을의 발걸음을 못내 아쉬운듯 붙잡기도 한다. 뉴욕의 가을 속에서 서울을 생각하는 것은 그러나 계절이 주는 감상 때문만은 아니다.맨해튼의 대부분 지하주차장들은 바깥 날씨가 가을이건 인디언 서머건 상관없이 여름이다. 냉방시설이 안돼 있고 배기 시스템조차 시원찮아 늘 후텁지근하다. 기자가 이용하는, 한국일보 해외제작본부 근처의 지하 주차장도 마찬가지여서 주차대행 직원들은 항상 땀냄새를 달고 다닌다.
근무여건으로 보면 열악하기 짝없는 이곳의 직원들은 그럼에도 자기 일만큼은 참 열심으로 한다. 일도 일이지만 이용객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선 파괴적 계급의식이라거나 어설픈 자기비하를 찾아보기 힘들다. 누가 가르치거나 의식해서 갖춘 것이 아닌, 저절로 몸에 밴 직업의식이 그들의 노동을 가치롭게 한다. 이들을 보면서 얼마전 맨해튼의 한 설렁탕집에서 목격했던 일을 소태같은 입맛으로 떠올리는 것은 건강한 직업의식이란 해당 직업종사자들의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식당에는 허드렛일을 하는 멕시칸 계통의 종업원이 있었는데, 20대 초반의 한인청년 손님이 계속해서 이 종업원을 『아미고야』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친구를 뜻하는 스페인어 「아미고(Amigo)」에 어린애 따위를 부를 때 쓰는 우리말 조사 「∼야」를 합성한 이 말은 누가 들어도 경멸의 뜻이 담겨 있었다. 이 종업원도 그런 낌새를 챘는지 대여섯번을 반복했는데도 요지부동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의 유흥업소나 고급식당을 가면 어느 한구석 그림자처럼 스며 있는 종업원들의 적대적 시선과 표정을 이 씁쓰레한 기억과 함께 자꾸만 되새김질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다는 막막함에서 일까.<뉴욕=홍희곤 특파원>뉴욕=홍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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