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화 작업 등 장본인 밝혀져/기업까지 개입… 수사향방 주목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파문이 확대일로로 치닫는 과정에서 두 인물이 새로운 핵으로 떠올랐다.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과 이원조 전은행감독원장이 그들이다. 두사람중에서도 정치권의 주된 관심은 이씨에게로 쏠린다. 여권의 정치자금에 관한한 그의 「명성」이 워낙 높았던데다 야권은 최근까지도 노씨 비자금과 92년 대선자금 조성의 주역으로 그를 줄곧 지목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검찰이 노씨 비자금 사건과 관련, 이씨에게서 포착한 혐의는 그가 노씨 것으로 보이는 수백억원대의 가차명계좌를 대리인으로 관리해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검찰이 지난 93년 이씨가 안영모 동화은행장으로부터 2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의혹을 추적하던중 이미 발견됐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이씨는 수사상황을 사전 감지한듯 신병치료를 이유로 황급히 도피성 외유를 떠나 검찰의 칼날을 피했으며 작년 10월 귀국한후에도 칩거한채 공식석상에 거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에대해 야권은 『여권이 대선자금이 드러날까봐 이씨의 도피를 방조했다』고 몰아붙였지만 검찰은 그의 외유기간중 무혐의로 내사를 종결했다.
이같은 상황은 5공청산과정에서 그가 받은 특혜의 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8∼89년 당시 그는 금융권등에서 5공의 검은 돈을 조성한 혐의로 수차례 검찰조사를 받았고 심지어 야권은 그를 정호용 의원등과 함께 「청산대상 6인방」으로 지목했으나 그때도 노씨가 후견인으로 나서 끝내 법망을 비켜갔다.
이는 곧 그가 5·6공, 그리고 현여권의 출범과정에 「핵심 돈줄」의 역할을 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 유일한 민간인출신 하나회 회원이었던 그는 신군부세력의 등장과 함께 금융권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 「황제」 또는 「대부」등의 별명을 얻었다. 그를 통하면 인사와 대출을 비롯한 모든 은행일이 안되는 것이 없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위력때문에 자연스레 그는 기업과 금융권으로부터 이른바 통치자금을 모금하는 역할을 전담하게 됐고 어느 정권도 그를 소홀하게 대우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침내 그도 노씨 비자금파문의 확산과정에서 비자금을 중개한 핵심이었음이 드러나 또다시 검찰에 소환될 운명에 처했다. 특히 이번 경우 검찰은 과거와 달리 이씨가 노씨의 재벌자금 모금에 직접 개입한 혐의를 구체적으로 포착하고 이권에도 관여한 혐의도 내사중인 것으로 전해져 귀추가 주목된다.
물론 검찰은 이씨가 노씨 못지않게 현정권의 출범과정에 중요역할을 담당했다고 의식한듯 아직 수사여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미 노씨와 이씨 사이의 커넥션이 드러난 이상 이씨의 소환조사는 시간문제라는게 정치권의 일반적 시각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이씨가 더욱 뜨거운 감자라는 얘기도 상당하다.
어쨌든 이처럼 노씨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두사람이 노씨의 차명계좌를 실명으로 전환하거나 가차명 계좌를 관리한 장본인으로 밝혀짐으로써 이번 비자금파문은 노씨 주변사람과 기업등으로 급속히 확산될 수밖에 없게 됐다. 앞으로 검찰이 노씨 비자금의 새로운 핵으로 떠오른 두사람을 어떤 방향으로 처리할지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이씨등의 등장자체만으로도 이번 파문이 어디까지 미칠지를 점치는 것은 한결 어렵게 됐다.<이유식 기자>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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