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씨의 지난 27일 기자회견내용은 외신에서 긴급뉴스로 다루어졌다. 박계동 의원이 지난 19일 국회에서 이 사건을 처음 폭로했을 때 1보를 내보냈던 외신들이 8일이 지나서야 뒤늦게 뉴스의 진가를 인정한 셈이다. 외신들은 1보만 내고 그 뒤 검찰이 수사에 착수키로 결정했을 때, 이현우 노전대통령 경호실장이 검찰에 출두했을 때도 거의 침묵했다. 일본언론들만 간간 속보를 실었다.국내의 언론들이 연일 이 사건 보도로 도배질하고 있었던데 비하면 남의 집 불구경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서울주재 외국특파원 몇 사람에게 이 사건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그들은 큰 관심을 갖고 사건추이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매일 본사에 기사를 송고하지만 모두 기사화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본사의 편집자들에게 한국분위기를 설명해도 알아듣지를 못한다는 얘기였다. 정치부패는 세계공통의 현상으로 이미 식상한 소재가 아니냐, 더욱이 한국정치가 깨끗하다는 평판과는 거리가 있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라는 것이었다.
한 일본특파원은 『속보를 쓰려 해도 새로운 팩트(Fact)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국언론의 보도는 대부분 추측성같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선 그런 내용의 보도는 명예훼손 소송대상이 되며 그래서 체질적으로 한국언론의 보도를 따르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외신들이 노씨 기자회견을 계기로 일제히 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비록 전직이지만 노씨의 직위가 대통령이었고, 무성했던 소문이 확인된 최초의 케이스인데다 무엇보다 금액의 천문학성으로 인해 이 사건은 식상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외신의 주목을 받게 됐다.
선진국에서도 노씨가 조성한 6억5,000만달러나 쓰다 남긴 2억2,000만달러의 정치자금은 상상키 힘든 돈이기 때문이다. 92년 미국대선에서 클린턴후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쓴 돈은 9,000여만달러였다.
사고 공화국에 이은 부패공화국의 망신살이 우리앞에 긴 음영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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