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곽재구·박남준·정종목 새시집 잇달아/사람살이 모습등 투명한 시어에 담아/삶의 성찰서 비롯된 고백의 정서 “애잔”만추의 시단에 서정성 높은 시집들이 선을 보인다. 김명수의 「바다의 눈」, 곽재구의 「참 맑은 물살」, 박남준의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정종목의 「복숭아뼈에 대한 회상」(이상 창작과비평사간)등 이번 주에 나올 시집들에는 실험성이나 문명비판보다 다양한 삶의 모습과 자기반성에서 비롯된 애틋한 고백의 정서가 드러나 있다.
「하급반교과서」 「침엽수지대」의 시인 김명수는 「바다의 눈」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사물들의 아프고 허전한 모습을 자신의 마음에 투영한다. 길가의 박새들이 「너에게도 곤궁한 세월이 있었다고」 일러주는 것을 느끼거나, 가을의 고요한 대지를 바라보며 「말이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고 되새기면서 시인은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을 알려준다.
「사평역에서」의 시인 곽재구는 다섯번째 시집에서도 토속적인 데로 향한 서정과 끈끈한 역사의식을 보여준다. 그동안 미장이, 배관공, 약장수, 술꾼등의 삶을 주소재로 다루었듯 억세고도 꿋꿋하게 살아내는 사람이야기가 이번에도 등장한다. 구음시나위, 흥타령의 주인공 조공례할머니와 김생임할아버지, 남도소리 육자배기를 부르던 떠돌이 장구잡이와 오억만, 지실댁등의 기구한 삶이 민요조의 가락에 실린다. 신효범, 서태지등 대중가수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새롭다.
「…누이야 잠시 귀 기울이면 들리지 않느냐…//꽃 따왔다/꽃 먹어라/고갯길 너머 읍내장 다녀온 어머니/풀죽은 목소리로 빈 광주리 내려놓을 때…//…열여덟 푸른 가슴/…눈부시게 흰 너의 젖가슴/함부로 구겨넣은 지폐 몇 장/낯선 술이름도 잊고//누이야 바람 부는 오월이면/이팝나무 아득한 꽃그늘에/몸을 눕히자」(「마령국민학교」). 남도의 정경과 사람살이 속에서, 웬만큼 세상이 바뀌었고 이웃들 생각도 달라졌지만 맺힌 곳은 풀어주고 소중한 것은 보듬는 자세가 한결같다.
박남준의 「그 숲에…」는 「어쩔 수 없는 슬픔의 무게를 가지고 세상의 한편으로 쓸쓸하게 다가가」는 시집이다. 스스로 이끼같이 숨어 사는 삶이라고 여기는 그는 「병이 깊다 병 밖의 가을도 이미 눈물겨운지 오래이다/…어디쯤이어요 이제 더 매달릴 수 없다/단풍이 진다」고 노래한다. 그는 꽃을 보며, 옛 사랑을 그리며, 숲을 떠도는 바람을 맞으며 이제 보여줄 것은 쓸쓸한 뒷모습뿐이라는 듯이 말하고 있다. 비참하다거나 하염없다거나 눈물난다거나 하는 격정적 시어가 반복돼 온전한 서정의 격을 잃는 경우도 눈에 띈다. 하지만 「거울 앞에 섰는데 분명 낯선 얼굴 하나/딱 정확하게 깨졌는데 비명소리가 고통스럽지 않네/…조각난 찢어진 만신창이의 누가 있는데/별들은 붉을 것인가 뚝뚝 떨어지는 하나 둘 별들이 지는가」(「분열증세」)와 같은 자기성찰은 안타까움과 순수함을 함께 느끼게 한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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