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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5.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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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학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선생이 공직을 물러나 낙향해서 세운 강학 위주의 서원이다. 우리나라의 거유로 손꼽히는 퇴계는 여기서 후학을 가르치며 학문연구에 몰두하는 아름다운 말년을 보냈다. 공인의 자리를 떠나서 매우 뜻깊은 은퇴의 세월이었다. ◆30대들어 처음 공직에 나선 이황선생은 30여년간 공인으로 여러 자리를 두루 거쳤다. 공직생활을 하게 된 계기는 자의반 타의반이었다고 한다. 연로한 부모와 가난 때문에 마지못한 일이었다. 40대에 이르러 그는 관직을 떠날 의향을 자주 비쳤다. 사퇴 이유는 건강이 나빠서였다고 하나 유학연구에 대한 집착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여러 차례 선조대왕에게 사퇴를 간청했다. 드디어 69세에 걸퇴하니, 만류하던 임금도 마지못해 허락했으니 그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왕이 떠나면서 남길 말이 없느냐고 하자 치세와 명주를 말했다. 명주는 뛰어난 자질이 있어야 하고 치세는 방비를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아무 미련없이 훌훌 털고 일어나 시골로 내려갔다. 깨끗한 낙향이다. ◆낙향이란 서울에서 시골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귀양은 방축향리라는 징벌의 뜻이다. 일반인의 그것과 달리 공인의 낙향은 한층 의미가 있다. 명예로운 은퇴의 방법으로 퇴장의 미학을 보여준다. 공직생활을 마치면 굳이 서울에 말뚝을 박고 눌러 앉을 까닭이 없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물러나면 워싱턴을 떠나 한적한데 옮겨 앉아 기념도서관도 세운다. 우리 정치계엔 이런 은퇴의 품위를 찾아보기 어렵다. 실향민만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행복하고 보람이 있는 일이다. 깨끗하게 낙향할 수 있는 공인의 모습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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