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 은행비밀보호 완화법따라… 정부요청땐 확인협력/비 마르코스·미 마약대부 예금 일부반환스위스은행은 더이상 「검은 돈」의 성역이 아니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일부가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 숨겨져 있다는 의혹이 강력히 제기되면서 이에 대한 확인과 환수가능성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노씨가 해외 비밀계좌를 가졌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93년 딸 소영씨 부부가 미국으로 밀반입했다가 적발된 20만달러의 자금출처도 스위스은행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금주 신원에 대한 기밀유지를 철칙으로 하는 스위스 은행에서도 비밀계좌 존재여부를 제3자가 확인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3자」가 개인이라면 불가능할 지 몰라도 정부차원이라면 가능하다. 즉 우리 검찰이 비자금의 해외유출 흔적을 찾아낸 다음 정부차원에서 스위스 정부당국에 공식 요청할 경우 노씨의 비밀계좌 존재 여부를 밝혀낼 수 있다는 얘기이다.
주한 스위스대사관도 이미 한국정부의 요청이 있을 경우 노씨 비자금의 스위스은행 예치여부를 조사하는데 협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간 세계 「검은 돈」의 도피처로 인식돼온 스위스은행도 예전처럼 예금주의 신원공개를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34년 예금주 비밀 공개를 범죄로 규정한 이래 한동안 이를 금과옥조처럼 지켜왔지만 최근 스위스 국내법과 국제조약에 의해 제한적으로나마 계좌정보가 공개되고 있다.
현행 스위스 관계법에 의하면 당국의 조사목적이 전제될 경우 은행도 관계자료를 제출하도록 규정돼있다. 대외적으로도 77년 스위스―미국간에 체결된 상호 형사범죄관련 협력조약및 81년 제정된 스위스 국제법률 지원법발효를 계기로 외국법원 및 정부에 계좌정보를 제공해야할 법적 의무를 갖게 됐다. 실제로 지난 9월 벨기에 정부는 빌리 클라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전사무총장과 관련된 뇌물스캔들을 조사하기위해 스위스정부의 도움을 받아 비밀계좌를 밝혀내기도 했다.
스위스은행에 감춰진 부정축재자의 검은 돈이 환수된 경우도 두차례 있다. 바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필리핀대통령과 미국인 마약대부 뉴턴의 반환사례이다. 필리핀정부는 86년부터 마르코스의 은닉예금 반환을 요구, 금년 8월 5억달러를 환수했으며 미국정부는 마약밀매혐의로 40년형을 언도받고 복역중인 뉴턴의 스위스 비밀계좌 예금 2,200만달러를 93년 되돌려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변수는 있다. 우선 총 590개의 스위스은행중 120개에 달하는 사설은행은 국영은행과 달리 고객의 예금정보에 대한 공개를 여전히 터부시하고 있다. 따라서 노씨가 사설은행에 계좌를 보유했을 경우 그만큼 추적은 어렵다.
비밀계좌가 실명이 아닌 차명으로 존재할 경우에도 계좌 추적과정이 더욱 험난해진다. 마르코스와 뉴턴의 경우도 실명계좌였기때문에 환수도 그만큼 용이했다는 분석이다. 이와관련, 최근 나치의 유대인 학살 희생자 유가족들이 2차대전전에 희생자들이 예치해놓은 3,400만달러규모의 차명계좌 자금 반환을 요청, 스위스은행도 적극 협력하고 있지만 계좌 추적작업이 난항을 겪고있다는 후문이다.
노씨의 계좌유무가 밝혀져도 환수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마르코스의 경우 반환요청부터 환수까지 10년이 걸렸으며 그것도 필리핀정부의 반환요구액 15억달러중 5억달러만 반환됐다. 뉴턴의 경우도 그의 예금액 4,400만달러중 스위스가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만 미국에 돌려졌다. 물론 노씨가 은닉자금을 실토할 경우 이같은 복잡한 과정은 생략될 수 있다.
89년말 현재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비밀계좌는 모두 3만여개. 예치금액은 1,350억달러(약 97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4억달러), 파나마의 군부실력자 노리에가(3억달러), 세코 전자이르대통령(40억달러)등 부패한 지도자들이 즐겨 애용하고 있다. 비자금 파문으로 국민의 가슴을 이미 멍들게한 노씨가 이같은 세계 부패지도자들의 명단에 끼여있는지 여부를 밝혀낼 책임은 이제 우리 정부의 어깨에 떨어진 것이다.<이상원 기자>이상원>
◎「노씨 돈」 도피경우 우리정부 대책안/유출확인후 추적 의뢰/정부 대 정부차원 협상
노태우 전대통령이 조성한 천문학적 규모의 정치자금 일부가 해외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 돈의 회수가능성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도피성 자금이 은닉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역시 스위스 은행. 만약 스위스은행에 돈이 숨겨졌을 경우 이돈의 회수는 정부대 정부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외무부는 이를 위해 수사당국인 검찰에 의해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즉시 스위스당국과 협상을 벌인다는 방침이다. 정부당국자들은 협상을 통한 돈의 회수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선 노전대통령이 해외에 숨겨둔 자금의 규모와 구체적인 은닉장소를 밝힐 경우 문제는 간단해 진다. 일반적인 절차를 거쳐 돈을 인출한뒤 국고에 귀속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전대통령 또는 친인척등이 스위스은행에 비밀계좌를 개설해 놓고도 이를 밝히지 않을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 진다. 이 경우 검찰의 수사에 의해 돈이 해외에 유출됐을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확인돼야 한다. 이어 외무부가 검찰의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스위스 당국에 비밀계좌의 추적을 요청하는 것이 다음 수순이다. 스위스 정부도 불법적으로 조성된 자금이 유입됐을 경우 이를 추적하는데 협조한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혀 놓고 있다.실제로 1년에 2,500건정도의 협조요청이 스위스당국에 접수되고 있다.필리핀 정부는 마르코스 전대통령의 사후에 협상을 통해 막대한 은닉자금의 일부를 회수한 바 있다.
그러나 비밀계좌의 소유자가 끝까지 잡아뗄 경우 현실적으로 회수는 어려워진다. 스위스 당국은 협조요청시 불법자금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빙성있는 자료의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고태성 기자>고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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