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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흡한 사과(사설)

입력
1995.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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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대통령이 대국민사과에서 「참담한 심경」이라고 했지만 이를 듣는 국민이 오히려 참담한 심경을 느껴야만 했다. 그것은 전두환전대통령에 이어 7년만에 또다시 전직대통령이 거액의 검은 돈을 조성·은닉했다가 사과하는 모습을 보아야 한 것과 노전대통령의 해명이 의혹만 증폭시킨데 따른 실망감 때문이다. 국민은 노전대통령이 진심으로 속죄하는 자세로 검은 돈의 전모를 솔직하게 밝힐 것으로 기대했으나 턱없이 미흡했다. 이는 진정한 해법(해법)이 아니다. 이제부터 모든 것을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는 당위성을 스스로 제공한 것이다.이번에 노전대통령이 뒤늦게나마 잘못을 시인·사과하고 어느정도 사실인지는 모르나 5천억원을 조성했고 1천7백억원을 갖고 있다고 밝힌 것은 일단 평가할만하다. 또 당연한 일이나 검찰조사에 응할 것이며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고 한 것도 가상하다.

그러나 그의 해명은 의혹투성이다. 우선 5천억원의 조성도 놀랄만한 규모이지만 이것이 주로 기업인들의 성금이라는 대목이다. 성금은 자의를 의미하는데 「실리」를 생명으로 하는 기업인들이 과연 이권과 특혜없이 다투어 헌금했겠는가. 강제모금여부도 그렇고 5천억원 속에 대형사업발주에 따른 리베이트자금이 포함됐는지 여부도 아리송하다.

다음은 당운영과 정치활동비, 그리고 그늘진 곳과 국가에 헌신한 인사들에 대해 3천3백억원을 썼다면서도 내역을 밝히지 않은 점이다. 5년동안 정치활동에 얼마를, 특히 지난 대통령선거때 여야후보들에게 얼마의 자금을 지원했는가 등을 조목조목 밝혔어야 했다.

끝으로 쓰다 남은 자금 1천7백억원을 중립내각출범 등으로 사회와 국가에 헌납하지 못했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선거후 퇴임직전까지 당연히 반납할 수 있는 것을 퇴임후 2년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숨겨뒀다는 것은 처음부터 개인이 착복하려는 의도였다고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함께 나쁜 줄은 알지만 통치자금이 관행이고 필요했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없다. 검은 자금 때문에 전임자를 백담사로 보내고도 잊었다는 것인가. 나아가 우리는 그가 말한 5천억원 조성과 1천7백억원의 잔액이 전부이며 단 1만원도 어긋나지 않은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제 검찰은 김영삼대통령이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고 노전대통령이 자금의 규모를 밝힌만큼 노전대통령을 즉각 소환해서 돈을 준 기업인들과 자의 및 이권·특혜여부, 그리고 정당운영 및 여야대선후보들에 대한 지원자금내역 등은 물론 밝힌 조성액과 사용액·잔액이 전부인가를 엄정하게 규명해야 한다.

국민은 이제 더 이상 대통령이 재임중 검은 돈을 멋대로 모으고 쓰고 은닉하여 국민을 울리고 허탈감에 빠지게 한 뒤 사과하고 무릎꿇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기를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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