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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처리­예우와 형평/김일수 고려대교수·형법학(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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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처리­예우와 형평/김일수 고려대교수·형법학(특별기고)

입력
1995.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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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우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다 주던 노태우 전대통령의 정치비자금문제는 노전대통령의 대국민사과와 해명을 통해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국민의 손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재임한 5년 임기동안 조성된 정치자금은 약 5,000억원이었고 그돈은 주로 기업인들이 낸 성금이었으며 재임 중 정치활동에 쓰고 남은 돈이 1,700억원 가량이고, 그 돈을 나라와 사회에 유용하도록 환원시키지 못한 것은 형편상 기회를 놓친 때문이라고 한다. 국민의 기대와 뜻을 저버리고 대통령으로서 결과적으로 부정축재를 한 꼴이 된 자신의 처사에 대해 깊이 자괴한다는 노전대통령의 모습은 진심의 표현이라고 믿고 싶다.그러나 그 경위와 내용의 설명만으로 아직도 납득하기 어려운 미심쩍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노전대통령은 임기 중 율곡사업, 원전건설, 경부고속철도, 영종도신공항건설등 국책사업 외에도 제2이동통신, 삼성 상용차진출, 골프장건설, 신도시건설등 대형사업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임기 종료에 임박해서도 서둘러 굵직한 국책사업들을 종결지으려 안간힘을 쓰던 정권의 행태에 대해 당시 장기적인 국책사업을 신중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다음 정권에 그 결정권을 넘겨야 한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았지만 막무가내였었다. 이미 의혹이 밝혀져 사법처리까지 끝낸 수서비리, 상무대비리, 동화은행 비자금사건 등도 정치헌금과 연관이 깊은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직대통령의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조성과 관련되었다는 결론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었다. 그만큼 우리 검찰의 칼은 두꺼운 정치적 보호막을 뚫고 진실을 파헤치기에는 무디기만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충격과 허탈감과 끓어 오르는 국민적 의분은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 나라의 권력핵심부가 마치 조직적인 범죄단체처럼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정치헌금을 끌어 모았고, 그것을 관리하고 은밀히 유지하기 위해 가명·차명계좌와 돈세탁에 혈안이 되었다는 사실은 가공할만한 일들이다. 노전대통령 재임시 우리는 범죄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고 그 전쟁의 와중에서 강화된 경찰권력·수사권력밑에 자유로운 시민의 삶의 일부를 넘겨주고 살아야만 했다. 시민들의 작은 불법앞에 추상같던 국가공권력이 그 핵심에서 저질러진 거대한 불법을 비호하는 방패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뼈아픈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하리라고 본다. 흐트러진 선악의 기준과 문란해진 법의 위상을 우리는 다시 추슬러 일으켜 세우지 않는다면 법과 정의에 의해 지배되는 평화로운 공동생활의 질서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검찰권은 노전대통령의 정치비자금비리에 대한 수사에서 국민의 검찰답게 일말의 의문도 없이 진실을 규명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한 개인에 대한 응징의 차원이 아니라 지금까지 정치권의 시녀 노릇 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던 검찰이 제 위상을 되찾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국민의 검찰로 거듭 태어나는 전기를 삼는다는 차원에서, 그리고 법적 정의의 실현은 정치적·현실적 계산보다는 진지하고 엄숙하다는 법치주의의 기본적인 룰을 국민의 법의식속에 새롭게 각인한다는 차원에서 엄정하고 공정한 수사가 되도록 해야한다.

지금까지 우리 검찰권의 수사관행은 구속수사에 편중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불구속수사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사회적 관심거리가 될 중대한 사안에서 검찰은 마치 처벌권을 가불해 쓰기라도 하듯 구속수사원칙을 견지해 왔던 것이다. 이와같은 관행에 비추어 본다면 이번 노전대통령의 정치비자금수사에서 검찰권이 취해야 할 수사의 태도에 대해서도 검찰권 스스로 형평의 관점에서 신중한 결단이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자칫 사회적 특권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불평등감정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꼴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중한 예우를 잃어서는 안되겠지만, 형평을 벗어나는 각별한 예우란 보통사람의 시대에 예외적인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결과가 될 것이고 그것은 바로 사회적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법앞의 평등원칙의 기본적인 요구를 무시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비록 전직대통령이긴 하지만 우리는 구속수사가 검찰권의 형평한 행사라는 원칙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법적 절차가 허용한 합법적인 강제수단을 총동원해서라도 우리는 진실을 규명하고 정당한 사법절차를 적용함으로써 권력의 정상에도 법은 통한다는 엄숙한 기풍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 스스로를 다시금 부끄러운 이등국민으로 전락시키지 않고 우리의 자존을 지키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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