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돈 뇌물 판명땐 사법처리대상”/“피해없게 해달라”발언에 일말기대재계는 27일 노태우 전대통령의 대국민사과 성명에 대해 『충분치 못하며 오히려 기업에 미칠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했다.
재계는 특히 노씨가 기업들로 받은 돈이 「뇌물」로 규정될 경우 강도 높은 처벌을 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재계의 이같은 걱정은 올들어 법원이 안병화 전한전사장과 이형구 전노동부장관의 뇌물수수사건 공판에서 뇌물을 준 기업인들에게 전과는 달리 검찰 구형량보다 오히려 높은 실형을 선고, 상당수의 기업인들을 「전과자」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에서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노씨의 성명직후 그룹 고위관계자 회의를 가졌던 일부 그룹관계자는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됐다. 자금의 조성과 사용내역을 상세히 밝히지 않은 채 기업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만 밝혀 비자금 5,000억원 조성에 참여한 기업을 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될까 겁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그룹의 관계자는 특히 『조성자금 5,000억원이나 남은 돈 1,700억원을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 기업입장에서 이번 성명은 안하느니만 못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수차례의 거짓이 드러난 상황에서 이번 역시 믿을 수 없으며 조성과정에 참여한 기업들쪽으로 화살을 돌리는 결과가 초래됐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그러나 그룹차원의 공식언급은 피했다. 특히 이번 파문에 시달리고 있는 일부 그룹의 고위관계자들은 아예 자리를 떴으며 대부분 관계자들은 노씨의 『기업에 대한 피해만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기대를 걸면서 파문의 최소화를 바란다는 기본입장만 되풀이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번 파문이 어두웠던 과거를 떨치고 국가경쟁력 강화에 사회 모든 계층이 함께 나서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는 원칙론적인 논평과 함께 검찰수사가 기업으로 확대되지 않기를 기대했다.
현대그룹은 이날 상오 아산재단 주최로 열린 「정보사회와 사회윤리」심포지엄에 그룹 종합기획실 및 문화실 주요간부와 계열사임원들이 대거 참석, 겉으론 노씨의 사과문 발표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시국과 관련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했으나 『이번 비자금사건을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전경련은 공식논평을 내지 않은 채 『이번 일로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기업의 의욕을 꺾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대한상의와 무협은 『혼란이 야기된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나 이번 파문이 기업에까지 확산돼 기업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기를 기대한다』는 논평을 냈다.<이종재 기자>이종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