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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지뢰밭”… 금융계 초비상/노씨 비자금 파문­금융가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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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지뢰밭”… 금융계 초비상/노씨 비자금 파문­금융가 주변

입력
1995.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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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호·은폐 드러나면 공신력 치명타/“이번엔 또 어디”… 「불똥」 진로에 촉각신한은행에 이어 동아투자 금융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2백68억원이 예치돼 있는 사실이 확인되자 금융권은 초비상에 돌입한 가운데 「비자금 태풍」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피해범위가 어디까지 미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태풍의 눈이 신한은행에서 동아투자금융으로 옮겨감에 따라 금융권 전체가 지뢰밭과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도무지 태풍의 진로를 가늠할 수 없다며 이런식으로 가다간 비자금태풍권에서 벗어날 금융기관이 없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금융계가 이처럼 불안해 하는 것은 비자금관리의 법적 책임 여부를 떠나 금융기관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공신력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점때문이다. 검찰 수사결과 신한은행등 금융기관들은 이 자금이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적극적으로 비호·은폐해왔다. 은행직원들이 수표바꿔치기 등 치밀한 방법으로 돈세탁을 도와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국민들이 금융기관을 어떻게 볼지 걱정이다. 은행이 마치 검은 돈의 도피처로 인식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투자금융(단자)회사들은 지금까지 비자금 의혹을 받을 때마다 『단기 자금을 취급하는 투자금융의 성격상 거액의 비자금이 묻혀있을 가능성은 없다. 있으면 은행이 유력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이번에 검찰 수사로 밝혀진 셈이다. 투자금융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전혀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혹시 자기 회사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재 검찰이 수사대상으로 올려놓고 있는 금융기관은 신한 상업 동화 조흥 제일 한일 서울 외환 국민등 9개은행과 동아 제일등 2개 투자금융등 모두 11개 금융기관이다. 이들 금융기관은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의 4백85억원 비자금 수사과정에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곳들이다.

그러나 박계동 의원의 비자금 폭로이후 계속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미확인 제보까지 합하면 비자금파문에 연루되지 않은 금융기관이 없을 정도다. 의원들이 폭로한 비자금규모는 구체적인 금융기관을 적시한 것만 4천8백19억원에 이른다. 이중 검찰이 확인한 금액은 신한은행 서소문지점 7백22억억원과 동아투자금융 2백68억원등 2천억원을 넘어섰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신한은행에서 드러났듯이 비자금이 여러 금융기관을 드나들며 치밀한 돈세탁과정을 거쳤을 것이 분명한 만큼 어느 금융기관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J투자금융의 한 임원은 『과거에도 투자금융이 마치 사채자금이나 검은 돈의 은닉처로 여겨져 피해를 많이 보았다. 최근에 이런 나쁜 인식이 많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비자금에 연루돼 투금업계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금융기관 관계자들은 또 『이번 비자금파문은 어떤 식으로든 조기에 마무리되는게 바람직하다』며 『금융기관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거의 비정상적인 영업관행을 탈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김상철 기자>

◎사채시장 급냉… “연쇄부도” 걱정/경기 둔화시점 겹쳐 생산·투자 위축/파문 확산땐 증시 등 엄청난 파괴력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파문이 확산되면서 기업의 생산·투자활동이 위축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경기 둔화시점에 갑자기 불어닥친 비자금 한파로 경기침체가 더 빨리 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연말께 주가가 1천포인트를 훨씬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던 주식시장도 당초 예상처럼 활기를 띠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6일 한국은행과 재계 관계자들에 의하면 검찰수사가 장기화할 경우 금융시장이 위축되고 이에 따라 기업의 자금조달이 적지 않은 애로를 겪을 것으로 전망됐다. D그룹 자금담당자는 『시중 자금사정이 좋은 편이라 당장 금리상승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해 금융시장이 어려워질 경우 내년도 투자계획을 조절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자금파문으로 사채시장이 위축됨에 따라 중소기업들이 특히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기계 부품업체인 K정밀 관계자는 『경기양극화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사채시장의 냉각으로 영세 중소기업의 연쇄부도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내년 우리 경제는 각종 물가불안요인에 선거까지 겹쳐 낙관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비자금파문으로 기업활동이 위축된다면 경제불안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국민적 의혹을 사고 있는 비자금 실체를 철저히 파헤칠 필요가 있지만,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실체가 처음 확인된 지난 23일 23포인트이상 빠졌던 주가는 24일부터 상승세가 계속돼 26일에는 종합주가지수가 1천포인트대에 재진입하는데 성공, 비자금파문이전으로 「원위치」했다.

그러나 증시전문가들은 예기치 않은 주가의 급반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비자금파문이 계속 불씨로 남아있는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예측불허의 비자금수사결과에 따라 주식시장이 또한번 혼란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다.

시중금리의 안정세와 경기연착륙 가능성 가시화등 증시주변여건의 호조에도 불구, 이번 비자금파문으로 일반투자자들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어버린 점이 더 걱정된다는 지적이다. 종합과세 회피성 자금의 유입등 기대를 모았던 외부자금의 증시유입도 한층 불투명해졌다. 2조6천억원대의 고객예탁금 정체와 거래량부진 상태에서 기관의 힘만으로는 주가의 본격적인 상승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전망이다. 따라서 연말까지 1천1백∼1천2백포인트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이 맞아 떨어질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해졌다는 것이다.<김상철·김병주 기자>

◎노씨­금융실명제 “물고 물리는 악연”/80년대 두차례 추진때 「사산」 관여/이번엔 비자금 발목잡혀 KO패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금융실명제다. 실명제가 없었던들 비자금처리에 전전긍긍했을리도, 천문학적 액수가 만천하에 공개됐을리도 없다. 노전대통령으로선 금융실명제는 평생 잊지못할 악연인 셈이다.

그러나 노전대통령은 과거에도 실명제와 뗄수 없는 인연이 있었다. 그는 80년대에 실명제가 두번 추진되고 철회되는 과정에 깊숙이 간여했었다.

금융실명제가 최초로 추진됐던 지난 82년 노전대통령은 실명제무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개혁성향의 김재익(작고) 청와대 경제수석과 강경식 재무부 장관은 투명한 경제질서확립을 위해 금융실명제를 강력 추진했다. 김―강라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전전대통령의 또다른 핵심측근이었던 허삼수 허화평씨 등 두 허씨와 이원조 석유개발공사 사장 및 민정당은 실명제를 강하게 반대했다. 팽팽히 맞선 친실명제파와 반실명제파 사이에서 고심하던 전전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던 이가 바로 노태우 당시 내무장관이다.

반실명제 세력들은 상황이 불리해지자 노씨에게 『실명제를 하면 정권이 위태로워 진다』고 설명했고 노씨는 이 말을 받아들여 전전대통령 설득에 나섰다는 것이다. 노전대통령은 제1차 실명제무산에 1등공신이었던 셈이다.

노전대통령과 실명제의 두번째 인연은 재임중이던 88∼89년에 맺어졌다. 「투사」에 가까운 개혁론자였던 문희갑(현대구광역 시장)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뿌리깊은 불로소득구조 타파를 위해 금융실명제 추진을 강행했다. 그 배경엔 노전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이 있었고 조순(현서울특별 시장)부총리도 이에 가세했다. 금융실명제준비단이 발족됐고 91년1월부터 실명제를 실시한다는 일정까지도 마련했으며 노전대통령의 실시의지도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89년말 경기가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거품에 찼던 주가도 폭락을 거듭하자 기득권층들은 「실명제 시기상조론」공세를 펴기 시작했고 숨죽이고 있던 재계도 실명제문제점을 내놓고 말하기 시작했다. 90년 3당합당으로 개혁의지는 퇴색했고 문―조팀은 대표적 실명제 반대론자였던 김종인 수석―이승윤 부총리팀으로 교체됐다. 실명제는 당연히 무산됐다.

당시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노전대통령이 실명제의지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명제는 문수석의 의지였고 노전대통령은 실명제를 믿었던 것이 아니라 문수석을 믿었던 것이다. 실명제추진도 무산도 결국 남의 말을 잘듣는 「엷은 귀」때문이었다 』고 말했다. 특히 노전대통령은 재벌들과 사돈관계를 맺은 이후 실명제의 순기능보다는 부작용에 훨씬 귀를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차례의 인연에서 노전대통령은 실명제의 반대편에 섰었다. 그리고 세번째 인연에선 철퇴를 맞았다. 그가 재임중 실명제를 단행했더라면 오늘날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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