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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체계의 위기(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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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체계의 위기(사설)

입력
1995.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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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금액의 6공 비자금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우리는 사회질서와 공익을 보호해야 할 국가권력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불신에 빠지게 된다. 사실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은 어떤 의미에선 국민의 정신 속에서 곪고 있던 국가 지도자에 대한 배신감을 바깥으로 터뜨려 해소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지도 모른다. 이번 사건을 통해 현 정권의 개혁의 핵심이 결국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인, 관료의 부정부패 척결일 수밖에 없음이 다시금 확인되고 있다. 우리는 이같은 문제를 접함에 있어 일시적인 정치적 호기심이 아닌 장기적인 역사 발전의 관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우리는 자유의사에 의한 계약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자본주의사회에 살고 있다. 이러한 계약사회는 사회성원들이 모든 계약관계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부속된 권리와 의무의 이행에 성실하게 임해야 순조롭게 유지될 수 있다. 이같은 사회성원들의 태도는 계약관계에 대한 사회 전반의 집단적 신뢰체계를 전제로 배양된다.

사회학자 뒤르카임은 이러한 집단적 신뢰체계를 「계약관계의 비계약적 기초」라고 부르고, 이 기초를 형식적 제도로서 표현한 것이 국가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청렴하고 강직한 국가 엘리트가 있어야 시민사회 내부의 정직한 계약질서가 순조롭게 유지되는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국가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한 상태에서 우리는 정상적인 계약사회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으며 결국 시민들은 총체적인 무규범상태에 빠질 것이다.

특히 모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이 걸린 국가 공공사업들의 수주를 싸고 기업과 정치권력 사이에 뇌물성 정치자금과 사업자 선정의 특혜가 교환되는 상황에서는 일반 시민들에게 정직한 계약사회 성원의 의무 이행을 기대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시민들은 다른 시민들을 속이고 배제하여 정당하지 못한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국가권력을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될 뿐이다.

최근 공직자 부정이 직간접으로 결부된 대형 비리사건, 안전사고들을 끊임없이 접하게 되고, 급기야는 국가가 행사한 모든 권력과 권위에 대해 최종적으로 책임을 졌어야 할 전직대통령의 상상을 초월하는 거액 비자금이 발각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우려는 깊어진다.

이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으로서 정부와 정계는 비리발생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고 재발방지책을 제도화함으로써 사회질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을 결연하게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일반 시민들도 깨끗한 정부는 시민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협력하여 발전적인 계약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기본적 전제 요건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이를 위한 국가의 활동에 적극적인 협력과 감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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