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의 은닉 비자금이 속속 노출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26일 현재 확인된 것만도 1천억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노전대통령이 앞으로 얼마가 더 나올지 모를 비자금을 사리사욕을 위해 은폐해온 것에 대해 사법적인 문책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관련하여 이제는 「검은 돈」은폐를 지금껏 가능하게 했던 은행의 돈세탁을 차단하는 방안을 강구할 때가 됐다. 이를 위해 돈세탁에 대해서 강력한 처벌을 가할 수 있는 돈세탁방지법을 만드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다.개혁중의 개혁이라는 금융실명제를 명실공히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도 돈세탁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더욱이 국제적으로도 마약자금등 범죄적 자금의 유통차단을 위해 돈세탁금지가 법제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우리나라도 금융·자본시장을 급속히 개방, 자금의 유입과 유출이 크게 자유롭게 되고 있어 돈세탁 금지의 필요성은 증폭된다.
우리는 현재 돈세탁에 대해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률적 제재가 없다. 단지 지난해 9월 은행감독원이 제정한 「금융기관내부통제업무취급요령」만이 돈세탁에 맞서는 제재수단이다. 이 규정은 돈세탁에 관여한 금융기관 종사자에 대해 견책에서 면직까지의 문책을 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제1, 2금융권을 막론하고 전금융기관에 만연돼 있는 돈세탁을 통제하기에는 처벌이 너무 가볍다.
뿐만아니라 돈세탁이 지점장이나 본점간부의 지시에 따라 본점이나 지점차원에서 이뤄질 때 사실상 문책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규정은 죽은 규정이나 다름없고 이번처럼 엄청난 사고가 드러났을 때의 처리용으로밖에 쓰이지 않는다.
따라서 돈세탁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제화가 요구된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국회에는 돈세탁에 대해 무거운 징벌을 요구하는 「자금 세정법」이 계류돼 있다.
지난해말 민주당의원 85명의 이름으로 제안된 이 법안은 돈세탁방지를 위해 금융기관에 대해 3천만원이상의 현금거래의 경우 그 거래 및 내용을 국세청에 통보하도록 하고 또한 돈세탁자에 대해서는 3년이상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상의 벌금을 물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돈세탁에 대해 가장 엄격한 미국의 제도를 본뜬 것이다. 형량에 대해서는 다른법과의 형평상 재조정이 필요할지 모르겠으나 입법취지는 수용돼야 한다.
금융계와 재계 그리고 정·관계 일부에서는 시기상조를 내세워 돈세탁방지법제정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돈세탁의 발호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 검은 돈을 뿌리뽑기 위해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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