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때문에 속시원히 해명도 못해/“무분별 수신경쟁의 결과” 자성목소리은행들이 비자금파문으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민주당 박계동 의원의 신한은행 서소문지점 비자금 폭로이후 야당의원들의 비자금 폭로발언이 잇따르자 해당 은행들은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한채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들은 이번 비자금파문이 그동안의 무분별한 예금유치 관행과 무관하지 않다며 지나친 수신경쟁에 대한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돈세탁이나 실명제 위반에 대한 임직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등 집안단속에 나서고 있다.
◆해명조차 할 수 없는 은행들 =제일 한일 상업 동화은행등 비자금 예치의혹을 받고 있는 은행들은 『야당의원들이 확인되지 않은 제보를 경쟁적으로 발표, 은행의 이미지가 큰 손상을 입고 있다』면서도 사실여부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할 수 없어 안타까워 하고 있다. 의원들이 주장한 계좌의 존재여부를 밝히는 것도 실명제(비밀보장) 위반이 되기 때문이다. 제일은행은 국민회의 신기하 의원과 박광태 의원이 이 은행 석관동지점에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319억원짜리 계좌가 개설돼 있다며 통장 사본까지 공개하자 통장의 내용에 모순점이 많다며 조작가능성을 제기. 우선 자유저축예금은 최고 한도가 5,000만원으로 이 금액을 넘으면 통장에 입력조차 안된다는 것. 또 첫 예금거래때 기록되는 「신규」표시가 없고, 인쇄활자가 이 은행 것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제일은행은 또 석관동지점의 전체 예금규모가 370억원이라며 한사람 명의로 이처럼 큰 예금이 있을 수가 없다고 주장.
그러나 제일은행은 신의원이 주장한 계좌가 실제 있는지, 예금내역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속시원히 밝힐 수 없어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수신경쟁 반성 = 은행들은 고객돈이 「흰 돈」인지 「검은 돈」인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은행들이 검은돈을 흰돈으로 세탁해주는데 수표바꿔치기 전표허위기재등 편법 또는 불법행위를 했다면 이는 다른 문제다.
신한은행에 예치된 485억원의 자금도 이같은 은행원의 협조에 의해 돈세탁이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금융계에선 은행의 이러한 비정상적인 예금관행이 근본적으로 수신경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대형 금융사고의 배경에는 항상 수신경쟁이 존재해왔다. 이번 비자금사건은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검은돈 흰돈 안가리고 예금계수만 올리려는 관행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시중은행의 또 다른 임원은 『손익을 생각하지 않는 지나친 수신경쟁이 문제다. 앞으로는 이런 수신경쟁은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돈세탁·실명제 위반 대책 =은행들은 이번 비자금사건을 계기로 은행원이 돈세탁에 직접 개입하거나 실명제를 위반하는 사례가 없도록 교육을 강화할 방침이다. 몇몇 은행들은 이미 「금융거래 비밀보장업무 취급요령」등 관련 교육자료를 일선 점포에 내려보내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으며 직원들에 대한 관리와 업무점검을 철저히 하도록 지시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이번 비자금사건으로 취약한 국내 금융산업이 더욱 위축되지 않을까 염려하면서도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김상철 기자>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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