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기」 여유 아쉬웠던 역작김민기가 창작 록오페라 「개똥이」를 올렸다. 독일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번안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른 후 마침내 그가 10년간 품고 다니던 자신의 이야기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위에 화려하게 펼쳐 놓았다. 스산했던 지난 날, 따사로우면서 꿋꿋한 노래들로 우리의 가슴을 적시며 때로는 은밀히 주먹을 쥐게 하던 그의 음악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남다른 향수와 설렘을 갖게 하는 공연이다.
벌레들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 환경문제, 힘의 투쟁, 권력의 달콤한 음모, 아가반디 개똥이의 갈등과 변신을 그린 내용에서 김민기 특유의 문제의식과 훈훈한 정서가 엿보인다. 그 위에 서양음악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우리의 가락과 리듬, 또 몇몇 노래에서 멋들어지게 엮어지는 정겨운 우리말 가사가 진지한 주제와 어우러져 창작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동안 잘 훈련된 학전단원들의 가창력과 앙상블도 신선하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너무 오래 참아온 탓일까? 「개똥이」의 극구성은 많은 갈래로 이루어져 산만하다. 벌레들의 세계를 보고 돌아와 잘 정리해서 흥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보다는 김민기 자신이 그들 안에 몰입되어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찾으려다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복잡한 이야기를 노래로만 풀어가다보니 내용 파악이 힘겹다. 록뮤지컬이건 록오페라건 알기 쉬운 이야기를 다양한 노래와 춤으로 일단은 재미있게 전달해야 하는데 「개똥이」의 경우는 복잡한 내용에 비해 노래와 춤들은 다양성과 활기가 부족해서 무겁고 지루하다.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생각한 뒤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 즉 작품을 객관화시키고 전달의 효과를 가늠한 「덜어내기」의 과정이 빠진듯하다. 공연제작과정에서 관객의 시각으로 보아야 할 연출이라도 다른 이가 맡았더라면 김민기의 벌레나라 안내에 좋은 동반자가 되었을 터인데 혼자서 작사 작곡 극구성 연출까지 도맡은 김민기의 과욕이 외로워 보인다.
그러나 김민기에 대한 존중과 관심은 여전하다. 남다른 감수성과 재능을 지닌 그가 시대에 의해 재갈물렸다가 벗어났을 때 그동안 참았던 것을 이렇게 한숨에 토해내 볼 만도 하지 않은가? 더 이상 시대와 소모적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되는 시기에 그가 좀더 여유를 갖고 펼칠 활약을 기대해 본다.<이혜경 연극평론가>이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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