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해법보다 법적판단 선택
노씨 비자금 파문
여권 대응책
˝여론악화로 더 피할여지 없다
정치적 고려는 그후에나 가능˝
여권은 지금 비상이다. 비자금파문이 걷잡을 수 없게 확대되고 마땅한 수습책은 없다. 수뇌부가 연일 머리를 맞대고 고심을 거듭하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갖가지 경우의 수를 대입해가며 해법찾기에 분주하다.
여권이 생각하는 해법은 크게 보아 두가지이다. 사법처리와 정치적해결이다. 5공청산때와 달리 이번에는 사법처리에 무게가 실려있다. 일단 검찰조사를 통해 법적인 판단을 내려야한다는 것이 여권의 공감대이다. 이는 여론의 요구이기도 하다. 그후에 정치적해결을 모색할수도 있다는 것이 수뇌부의 입장이다.
정치적 처리의 핵심은 결국 노태우전대통령이 비자금의 전모를 숨김없이 공개, 이를 헌납하고 연희동을 떠나는 것이다. 문제는 비자금의 규모와 행선지이다. 시중의 여론은 노전대통령측이 공개한 4백85억원에 대해 납득하지 않고있다. 10배는 될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비자금의 과거와 현재를 낱낱이 밝혀야한다는 것이 여권의 입장이다.
이와 관련, 김윤환민자대표는 이미 서동권(서동권)전안기부장을 통해 이같은 확고한 입장을 연희동측에 전달했다. 김대표는 『모두 공개하고 「다음에 또 나오면 어떤 책임이라도 지겠다」고 밝혀야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해야 할 일은 참회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과거 5공청산때의 백담사(백담사)행이 모델이다. 그러나 여권은 현재의 여론이 5공청산때 보다 더 나쁘다고 보고있다. 「백담사」정도로는 해결이 안된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여기서 나오는 해법이 해외이주이다. 5공청산당시 전두환전대통령에게도 해외이주방안이 제시됐으나 전전대통령이 완강히 거부해 행선지가 국내로 바뀌었다.
여권의 이러한 해법에 대해 현재까지 노전대통령은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국민사과와 비자금 헌납까지만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여권은 압박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사법처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국민에 대한 예의로 노전대통령 자신이 먼저 전모를 밝혀야 한다는 요구이다. 거부하면 사법처리로 갈 수밖에 없다는 통첩인 셈이다. 노전대통령측이 지렛대로 삼고있는 「대선자금」에 대해서도 『자신있다』는 태도이다. 여권은 김영삼대통령이 귀국하는 오는 28일 이전에 수습의 가닥을 잡기 위해 더욱 고삐를 조이는 듯하다.
그러나 노전대통령이 여권의 이같은 간접적 요구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사법처리가 면제될 것인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김윤환대표등 민자당수뇌부와 일부 민주계 강경세력간의 미묘한 입장차이가 노정되고있기 때문이다. 김대표 역시 어느 당직자 못지 않게 비자금문제에 강경 대처하고 있지만 이번 파문을 계기로 판을 깨려는 움직임에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김대표가 다시 중재역을 맡을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 반면 민주계 일각에서는 노전대통령측의 어떤 사전조치가 있더라도 사법처리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파문이 정계개편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결국 6공단절 해법찾기는 현정권과 6공의 줄다리기뿐 아니라 여권내부의 역학관계라는 복잡한 구도속에서 진통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정광철기자】
여권 「6공단절」 가시화 배경
˝어정쩡한 봉합땐 공멸˝ 인식
92년 대선자금문제 대응논리에 자신감
「합당멍에」 벗고 국정운영축 재정비의지
여권과 6공과의 단절이 시간문제로 대두됐다. 김윤환민자당대표는 비자금파문의 수습책으로 「대국민사과―전비자금공개및 헌납―낙향」을 노태우전대통령측에 요청했다고 공개했다. 이 수순은 6공정권이 전두환전대통령에게 요구했던 것의 재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전대통령의 백담사행이 5공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면 노전대통령에 대한 낙향요구는 6공단절의 또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현정부 출범후 2년반동안 노전대통령을 향한 갖가지 구설수와 비판여론을 막아주며 비교적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던 여권의 태도가 1백80도 달라진 배경은 간단해 보인다. 비자금파문의 폭발력이 워낙 강해 적당한 선에서 이번 사건을 처리할 경우 현여권마저 치명적인 도덕적 상처를 입게된다는 판단이 그것이다.
지방선거패배후 국정운영의 중심축이 범여권의 대화합으로 옮겨졌지만 국민정서가 가장 거부감을 가진 최고권력자의 「검은 돈」문제마저 어정쩡하게 넘어가는 것은 공멸(공멸)을 자초한다는 인식도 있다.
따라서 여권내 신·구(신·구)세력의 갈등과 이에따른 정국시나리오의 혼선을 감수하더라도 차제에 6공과 확연한 선을 긋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얘기이다. 특히 여권이 그동안 아킬레스건(건)처럼 여겨왔던 92년 대선자금문제를 정공법으로 대처키로 한 것은 이미 내부적으로 단절 시나리오에 착수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관련, 여권 고위관계자는 『김영삼대통령이 대선당시 노씨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았더라도 그것은 당차원에서 이뤄진 일』이라며 『특히 김대통령은 취임이후 일체의 정치자금을 배척하고 금융실명제를 단행했기 때문에 노씨측이나 야권이 이 문제를 물고늘어져도 충분한 대응논리가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노씨 비자금사건의 또다른 핵심은 최고권력자가 겉으로는 결백한 척 하면서 엄청난 액수의 비자금을 조성, 퇴임후까지 사금고로 관리해온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노씨측이 뭔가 터뜨릴 것이 있는양 한다면 그 자체가 우스운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여권이 6공단절을 결심하게된 이면에는 또다른 고려도 있는 것같다. 한마디로 3당합당의 유산을 멍에처럼 짊어진채 국정을 여권핵심부의 의도대로 이끄는 것이 한계에 부딪쳤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당장 내년부터 표면화할 권력누수현상을 제어하려면 더욱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되는데도 탈당등 민자당의 동요가 계속되고 관료사회등 여권조직 곳곳에 허점이 표출돼왔다. 때문에 비록 여권일각이 떨어져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국정운영의 틀을 새롭게 정비, 총선등 향후 정치일정에 임해야한다는 요구가 줄곧 제기돼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비자금사건은 이같은 요구를 가시화할 동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이와함께 여권과 6공세력과의 대화채널 부족과 그동안 쌓여온 상호 불신감도 6공단절의 간접적 요인이 됐다고 해야할 것같다. 어떻든 6공단절작업은 한동안 상당한 파열음을 낳으면서 세대교체, 정치세력 재편등의 이슈를 정치권의 본무대에 올리는 기폭제가 될 것같다.
【이유식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