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검은 돈 천국 스위스 은행/비밀보장에 이자대신 보관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검은 돈 천국 스위스 은행/비밀보장에 이자대신 보관료

입력
1995.10.26 00:00
0 0

◎89년 현재 3만여비밀계좌 97조원 예치독재자가 실각하거나 과거 권력자가 심판의 도마에 오르면 전세계의 이목은 스위스로 향한다. 「이번엔 얼마나 많은 돈이 스위스 은행에 감춰져 있을까」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파문도 예외가 아니다. 노전대통령이 율곡사업과 관련해 커미션으로 받은 돈을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 입금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은행들은 세계 검은 돈의 집결지다. 세계의 몰락한 권력자들은 예외없이 재임시 스위스 은행에 천문학적 비자금을 예치해 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뿐아니라 범죄의 검은 돈도 주요 고객이다. 국제마약조직들은 이곳을 가장 안전한 돈세탁 장소로 애용하고 있다.

스위스 은행들이 검은돈의 메카가 된 것은 스위스제 방수시계 만큼이나 철저한 고객 비밀보장 때문이다. 스위스는 지난 92년까지만 해도 고객비밀보장을 위해 「눔머른 콘토」라는 은행법이 있었다. 예탁자는 비밀을 보장받는 대신 이자를 받는게 아니라 오히려 보관료를 낸다.

스위스에는 89년말 현재 500여개의 은행에 3만여개의 비밀계좌가 있으며 예치금액은 1,350억달러(97조2,000억원상당)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객중 대표적인 인물은 마르코스 전필리핀 대통령. 86년 권좌에서 축출될 때까지 약 100억달러를 입금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정권인 코라손 아키노정부는 이의 환수를 요구했으나 수년에 걸친 복잡한 재판끝에 겨우 5억달러를 찾아내는데 그쳤다.

비참하게 처형된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도 4억달러 상당의 금괴를, 파나마의 독재자 노리에가는 3억달러에 이르는 검은 돈을 예치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부투 세세 세코 전자이르대통령도 40억달러를 예치해 둔 것으로 93년 폭로됐으며 79년 회교혁명으로 쫓겨난 팔레비 전이란국왕, 구엔 반 티우전월남대통령,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고객으로 거론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형욱 전중앙정보부장이 스위스 은행에 비밀계좌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었다. 또한 93년 노전대통령의 딸 소영씨 부부가 미국에 위장분산예치했다가 문제가 된 19만달러도 스위스은행의 계좌에서 인출됐다는 것이 미검찰의 수사결과였다.

스위스 은행은 이같은 비밀주의로 인해 「국제 장물아비」란 오명을 얻었다. 이에 스위스 정부는 89년부터 검은돈의 보관·세탁을 방지하기 위한 개혁을 추진, 92년 9월부터 비밀계좌제도를 폐지하고 실명제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위스 국내총생산(GDP)의 10%와 세수의 20%를 제공하는 금융업의 전면적인 투명화는 아직 요원하다. 현재 120개에 이르는 사설은행들은 여전히 고객의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관행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배연해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