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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기 이야기(공연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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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기 이야기(공연읽기)

입력
1995.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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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후반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오페라공연에 「자막기」라는 것이 등장했다. 오페라의 고전들이 영어 이외의 언어, 특히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노래가 불려지는 동안 그 내용을 알아듣게 하려고 만든 실용적인 장치다.처음에는 보수적인 오페라 매니아들로부터 상당한 반발이 있었으나 이제 자막기는 어쩔 수 없이 전세계로 퍼지는 추세이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발전되어가고 있다. 오페라의 공연횟수나 관객인구가 미국이나 유럽만 못한 우리나라에는 비싼 최신의 자막기를 설치한 극장은 아직 없고 다소 불편한대로 슬라이드를 비추는 것으로 자막기를 대신하고 있지만 아무튼 원어공연을 할 때 번역장치는 이제 거의 필수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빅토르 위고가 자신의 희곡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오페라 「리골레토」를 보며 감탄한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유명한 4중창을 들으며 그는 『연극이라면 이렇게 동시에 여러 사람의 대사가 나오면서도 아름다운 것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말했는데 이야말로 연극과 오페라의 차이점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페라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대사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차원에 있다. 보수주의자들이 자막기를 반대하는 것도 오페라를 「전체로」 이해하는 것을 방해받을까 우려하는 까닭이다.

서양의 자막기는 오페라가 나온지 4세기 만에 「마지 못해서」 나온 것이다. 그동안 그들은 오페라작품을 만들면서 동시에 번역을 계속 매만져 왔고 발음법을 끊임없이 연구했고, 학술적인 연구와 일반을 위한 해설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을 전혀 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자막기를 들여오면 오페라의 관객이 「삽시간에」 작품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뿐 아니라 오페라의 말은 「어차피 못 알아 듣는 것」이니까 자막기로 가사를 알리고 그 대신 발음은 적당히 얼버무리려는 경향도 보인다. 이탈리아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로 공연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정작 출연진과 연출자는 이탈리아어를 모른다면 그 무대는 결과를 짐작해 볼 일이다. 게다가 자막에는 애써 읽어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딱한 번역이 난무한다. 이것으로 관객이 어떤 도움을 받으리라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외국 것을 그저 들여왔을 때의 부작용이 어찌 이것뿐이랴? 우리나라에는 대접받지 못하면서 대접받는 것으로 착각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조성진 예술의전당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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