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사·관련공사 수주 등 개입/정치자금 모금·관리·사용까지이현우 경호실장이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의 일차 책임자가 된 것은 3공때부터 내려온 경호실장의 관행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비자금은 용어 자체가 말해주듯 은밀함을 생명으로 한다. 비밀을 유지하려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인사가 개입되기 마련이다. 여기에 비자금을 조성하는 인사는 힘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신임과 힘을 갖추어야만 비자금 조성책임자라는 소임을 다할 수 있다. 대통령 주변에서 신임과 힘을 갖춘 인사의 일순위가 바로 경호실장이다. 경호실장과 청와대 권력의 쌍벽을 이루는 비서실장은 신임은 있지만 힘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역대 경호실장의 면면을 보면 이같은 사실이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경호실이 정식 발족된 이래 거쳐간 9명의 경호실장중 문민시대의 박상범 실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군 출신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장수하며 당대의 세도가 노릇을 했다.
박정희전대통령시대의 박종규·차지철 실장은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전두환 대통령시대의 장세동 실장은 6공과 문민정부에서 두차례에 걸쳐 사실상 5공세력을 대신해 옥고를 치렀다. 이현우실장도 노전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아래 군 인사와 무기구입등을 총괄했고 군 관련공사등은 그의 손을 거쳐야 수주가 가능했다고 한다.
이들의 재임기간만 봐도 그렇다. 박실장은 경호실의 실질적 창설자로(초대경호실장 홍종철씨는 당시 차장이던 박씨에 밀려 6개월만에 물러났다)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 일어난 74년까지 10년 2개월이나 재임했다. 차실장은 박실장의 후임으로 79년 10·26사건으로 처참한 최후를 맞을 때까지 5년 2개월동안 자리를 지키며 2인자 행세를 했다. 박대통령 18년 통치기간에 경호실장은 사실상 이들 두명 뿐이었던 셈이다.
장실장도 85년 안기부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3년 6개월이상 재임했다. 이실장도 노대통령과 같이 임기를 시작해 92년 중립내각 출범에서 안기부장을 맡을 때까지 4년 8개월동안 자리를 지켰다.
비자금을 주물렀던 경호실장들의 행태도 당시의 세태와 권력주변의 환경을 반영한다. 개발독재시대에 재임했던 박실장은 스웨덴제 긴 권총을 두 자루나 차고다녀 「피스톨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버릇이 없다는등의 이유로 그에게 봉변을 당한 정부고관이 한 둘이 아니다. 박실장은 정치자금 모금에도 관여해 상당한 축재를 했다가 5·18이후 부정축재자로 된서리를 맞았다.
유신시대의 2인자임을 자부했던 차실장은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경호실장으로 기록된다. 성질이 급한 그는 박대통령을 제외한 누구에게나 툭하면 권총을 들이대고 주먹을 휘둘렀다. 그는 정치자금 모금과 사용은 물론, 통치권 행사에까지 깊이 개입했다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불귀의 객이 됐다.
장실장은 5공청문회를 비롯, 두차례 옥고를 치르는 과정에서 일관되게 『모든 것은 내책임이다』라고 전전대통령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보였다. 특히 그는 경호실장과 안기부장 재임시절의 직무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 『공인은 직무상의 기밀을 공직을 떠난 뒤에도 지키는 것이 기본』이라는 자세로 침묵을 유지했다. 이실장은 노대통령의 스타일처럼 조용하게 업무를 수행했지만 군 관계와 비자금 관리등에 있어서는 전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홍윤오 기자>홍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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