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기 쉽고 안전한 외국은 선택 가능성”/고의환차손·바꿔치기송금등 방법 다양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파문과 관련, 6공비자금의 해외은닉 가능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돈엔 국경이 없고 더욱이 숨기고 싶은 돈이라면 국내보다는 외국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재산의 해외유출은 외국환관리법에 의해 엄격히 통제된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해외로 갖고 나가거나 송금할 수 있는 돈의 액수는 일정한도로 묶여 있으며 외환자유화 이전인 6공시절엔 그 규제가 더욱 심했다.
금융계 및 기업관계자들은 그러나 『규정은 규정이고 마음만 먹으면, 특히 권력층이라면 재산도피의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대외거래가격조작 변칙과실송금등 기업을 이용하는 방법 ▲현지인과 공모해 송금하는 방법 ▲금융기관을 통해 고의환차손을 유도하는 방법등 공공연히 알려진 외화변칙 반출수법만도 수십여가지다.
가장 확실한 재산해외도피수단은 기업을 통한 리베이트. 외국수출업자와 짜고 국내 수입업자가 거래대금을 실제보다 높게 지불하면 차액만큼의 외화를 합법적으로 반출할 수 있다. 또 선박수리비 운임 하자보상비등을 과다책정해도 같은 유출효과가 있다. 해외지사가 국내본사에 이익금을 줄여 과실송금한다면 현지 세무당국에 적발되지 않는한 비자금조성은 어렵지 않다. 원시적이긴 하나 자기앞수표를 외국에서 한국계 금융기관이나 기업으로부터 할인받는 길도 있다.
우리나라로 송금하려는 외국인만 찾으면 기업을 통하지 않고도 외화반출은 가능하다. 즉 외환당국「의 감시를 받으며 타국은행 자기계좌로 송금하는 방법대신 국내인과 외국인이 사전공모해 각각 동일금액을 자국내 은행에 개설된 상대방 계좌에 입금만 하면 감쪽같이 「바꿔치기 송금」이 가능해진다.
금융기관에 돈을 예치한후 복잡한 「환세탁」과정을 거쳐 고의로 환차손을 유도할 수도 있다. 지난해 모외국계은행은 종교단체자금을 받아 운용하면서 해외지점과 스와프거래를통해 거액의 환차손(상대은행은 환차익)을 자초, 결국 돈을 해외로 고의유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었다. 베일에 가려진 VIP고객관리로 유명한 외국계 은행을 통한다면 첨단기법에 의한 「합법적 변칙재산반출」은 충분히 가능하다는게 금융계의 지적이다.
민주당 이철 원내총무는 이와 관련, 『6공때 공군주력기종을 F18에서 F16으로 바꾸면서 전체 커미션 2천억원중 2백70여억원만 청와대에 전달됐고 나머지는 스위스은행에 입금됐다는 제보가 있었다』고 해외비자금의혹을 공식 제기했다. 또 야권에선 노전대통령의 딸인 소영씨 부부가 지난 93년 미국에서 총 20만달러를 신고없이 현지은행에 분할예치시켰다가 검찰에 기소됐던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아직까지 6공비자금의 해외조성 및 은닉여부는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설령 숨겨졌더라도 해외비자금 부분은 「엄청난 추적비용」으로 인해 검찰수사로도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라는게 일반적 지적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제보 쇄도… 야 연일 폭로공세/“율곡 커미션 2,000억… 브로커 신원도 파악”/“전·노씨 7차례나 만나 신당창당 논의했다”/“제일은 석관지점에 319억 더…” 계좌까지 공개
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 관련 제보가 쇄도하면서 폭로전이 가열되고 있다. 민주당 박계동 의원의 노전대통령 비자금 보유 주장이 사실로 확인되자 루머수준에 머물던 각종 비자금설이 구체성을 띤 「정보」로 무게를 더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야당 의원들은 제보전화를 받느라 밤잠까지 설친다고 하소연하면서도 득의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비자금 폭로전은 일단 박의원이 속한 민주당이 기선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박의원은 노전대통령 4천억원 보유설 폭로에 고무된 듯 다음날인 20일에는 『노씨가 2천억원을 더 보유하고 있다는 제보가 접수돼 확인중』이라며 연희동에 대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철 총무 역시 6공 당시 경호실 직원으로부터 받은 제보 내용을 공개, 『신한은행 서소문지점 외에 중앙투자금융, 신한은행과 한일은행 본점등에 3백억∼5백억원씩의 비자금이 분산 예치돼 있으며 노씨가 93년초 퇴임 당시 청와대 경호실 과장들에게 20억원씩 돌렸다』고 주장했다. 이총무는 또『율곡사업 추진중 노씨가 기종을 F18에서 F16으로 바꾸면서 2천억원의 커미션을 챙겼으며 이중 2백70여억원은 청와대에, 나머지는 스위스은행에 예치했다는 제보도 있다』며 『커미션 브로커의 신원을 이미 파악한 만큼 사실여부는 곧 드러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군출신인 강창성 의원은 23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대통령 재임기간에 전두환씨는 1조6천억원, 노씨는 1조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했으며 전·노씨는 여전히 6천억∼7천억원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게 금융가의 정설』이라며 『이 비자금을 토대로 전·노씨가 7차례나 만나 5·6공 신당 창당을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측도 뒤질세라 당과 의원에게 접수된 비자금 제보내용을 터뜨리고 나섰다. 신기하 총무는 『제일은행 석관동지점에 장근상씨 명의로 4천억원 비자금중 일부인 3백19억여원이 입금돼 있다』는 내용과 함께 계좌번호까지 공개했다. 정대철 부총재도 『익명의 제보를 받았으나 현재 확인중인 만큼 구체적으로 입증되면 공개하겠다고』고 밝혔다.
폭로전이 가열되자 기업이미지 훼손을 우려한 관련 은행들은 사실무근임을 언론에 알리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실체의 전모는 아직 안개 속이다. 언제 다시 정확한 물증과 함께 「제2의 폭로」가 터져 나올지 모를 일이다.<황상진 기자>황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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