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차대전의 불세례를 받은 국가들이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목적으로 창설한 유엔이 오늘로 50주년을 맞는다. 지난 반세기동안 유엔이 과연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지금이야말로 팍스 유엔(PAX UN)의 꿈을 재확인하고 유엔의 기능을 회복, 강화해야 할 때다.우리나라를 비롯, 16개국 정상들이 50주년 전야 뉴욕에 모여 유엔체제 개편 및 세계 다자협력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재확인키 위해 8개항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것도 이런 뜻에서다.
돌이켜 보면 2차대전의 열전을 뒤이은 냉전기는 비록 차가웠지만 오랜 평화의 시기였다. 냉전체제하에서는 지역분쟁이 자칫 세계적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과 소련은 각기 지역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이를 조기 수습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열전의 종식이 차가운 평화를 가져왔다면 냉전의 종식은 잘 봐주어서 미지근한 평화를 가져왔을 뿐이다. 상이한 국가와 민족을 결속해 온 초민족적인 이념은 퇴조한 대신 그 이면에 가려져 있던 인종,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탈냉전 시대에 유엔의 역할은 더욱 증대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안보리의 연평균 결의건수가 창립후 45년간은 15건에 불과했던 것이 냉전 종식 이후인 최근 5년동안에는 70건으로 늘어났다.
특히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은 엄청난 양적 팽창을 보이고 있다. 보스니아를 포함해 16개 지역에서 평화유지군이 활동을 벌이게 됨에 따라 90년 4억달러에 불과했던 평화유지군 예산은 현재 4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또한 유엔은 지구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92년 환경정상회담, 93년 세계인권회의, 94년 인구와 개발회의, 95년 사회개발정상회담과 여성회의를 개최했다.
그렇다고 해서 유엔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안보이사회에서 5대 강국에 부여한 거부권은 물론이고 1국1표제와 가중투표제 문제등 의사결정방식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방만한 조직과 운영 또한 개혁요구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유엔의 증가된 역할을 뒷받침할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은 국제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해 사실상 대안없는 선택이다. 본질적으로 국제사회는 주권국가로 구성된 「무정부사회」다. 질서유지역을 할 패주가 사라진 이상 주권국가들의 동의 위에 선 국제기구가 그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 각국 특히 강대국은 세계평화에 무임승차하려고만 들지 말고 예산과 군대의 지원에 인색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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