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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독정부 기밀문서를 읽고/김성철 민족통일연책임연구원(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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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독정부 기밀문서를 읽고/김성철 민족통일연책임연구원(특별기고)

입력
1995.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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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죽기전까지 사회주의 환상 고집/88올림픽 성공,권력층 체제위기감 고조우리는 동구 및 소련 사회주의체제의 몰락으로부터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의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우선 사회주의체제가 걸어온 길, 즉 체제의 형성, 발전, 변화, 위기, 소멸 등의 과정을 담은 생생한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 이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는 북한의 장래를 추측하기도 하고 예견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이들 나라들로부터 북한에 관한 자료들을 일부나마 입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자료를 분석함으로써 지금까지 기술된 북한 사정을 재확인하거나 취약한 부분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됐다. 구소련의 기밀문서뿐만 아니라 이번의 구동독 기밀문서가 이같은 자료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구동독의 기밀문서는 북한체제의 폐쇄성때문에 우리가 직접 관찰하거나 경험할 수 없는 부분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북한의 대외 또는 대남 정책에 대한 분석을 상당부분 김일성 또는 김정일의 공식문헌이나 관영 언론매체들을 통해 알려진 내용에 의존해야만 했다. 이런 내용들은 권력 엘리트의 노선과 정책을 정확히 파악하는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구동독의 기밀문서에는 김일성뿐만 아니라 북한엘리트들의 비교적 솔직한 생각이 담겨져 있어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기밀문서를 통해 우선 김일성의 독특한 이념적 집착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즉, 그가 이른바 남조선해방이라는 환상과 사회주의에 대한 이상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집착은 88년 호네커의 부인인 마르코트 호네커와의 대화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 시기는 대부분의 사회주의체제들이 개혁·개방 노선을 택함으로써 사회주의의 본질적 속성이 쇠퇴해 가고 있던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남한 학생들의 반체제 시위를 자신의 통일전선 차원에서 대체로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동시에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 자세를 견지하려 했다. 물론 이것은 위기의식을 위장하려는 언술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김일성은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농촌의 협동적 소유를 전인민적 소유로 전환해야 한다는 「1964년 사회주의 농촌테제」의 논리를 그대로 되풀이하여 주장했던 점에 비춰 본다면, 실제로 사회주의적 이상을 끝까지 저버리지 못하고 있었음이 확실하다.

기밀문서는 또 김일성이 독특한 정치적 언술을 발휘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예컨대, 84년 호네커와의 회담에서 남한과 미군 병력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이 40만∼45만명의 군대를 유지해야 한다거나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에 비해 열등하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이는 북한의 병력 수를 허위로 꾸미거나 군사력을 의도적으로 과소평가함으로써 동독 지도자의 심정적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정치적 언술임에 틀림없다. 그는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어떤 연설에서도 그같이 북한의 군사력을 과소평가한 적이 없다.

김일성의 발언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내용상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점차 북한체제가 위기를 향해 치닫고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타난다. 김일성은 77년 호네커와의 정상회담에서 북한경제의 어려움을 동독의 국제주의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86년의 정상회담에서는 식, 의, 주의 문제를 직접 거론해가며 북한이 처한 경제난을 호소했다. 이는 제2차 7개년 계획(1978∼1984)이 끝나고 「경공업혁명」의 기치아래 인민소비품증산운동이 실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생활조건이 해결되지 못했음을 자인한 것이어서 주목을 끈다.

구동독의 기밀문서는 북한 권력 엘리트들의 체제유지에 대한 위기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끈다. 최태복이나 황장엽 같은 지도급 인물들은 김일성에 비해 이념에 집착하기 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편이었다. 실무적문제를 해결하려는 입장에 놓인 인물들이었던 만큼 정치적 언술보다는 「솔직한」면모를 보여주는 발언을 한 셈이다. 기밀문서는 특히 이들이 88년의 서울 올림픽과 그 여파에 대해 피해의식 내지 위기의식에 쌓여 고심하고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같은 권력 엘리트들의 위기의식은 실제로 서울 올림픽이후 북한의 대내외 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북한은 89년 평양축전을 위한 과도한 재정지출로 경제침체를 가속시켰고 91년에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주창하면서 북한 사회주의체제를 민족주의로 채색하는 정책으로 선회했다. 이같은 변화는 내적 동요를 차단하고 체제수호를 기본으로 하는 수세적 정책에로의 방향전환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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