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천억 비자금설을 조사하기로 결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4천만 국민이 모두 알 정도로 소문이 퍼졌고 「단순한 소문에 불과하다」는 검찰수사 결과 발표후에도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 구체적인 자료까지 제시된 만큼 이제 비자금설을 더 이상 그냥 덮어둘 수 없게 됐다고 판단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정부가 일단 조사를 하기로 한 이상 이번 만큼은 결과가 내다보이는 뻔한 조사나 겉핥기식의 형식적인 조사를 해서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의 비자금설 발언을 계기로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가 「소문」이라는 결론으로 사태가 종결된 것이 나라를 위해서나 정부를 위해서나 아무런 도움이 못됐고 국민들 사이에 오히려 불필요한 의혹만 더 증폭시켰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도덕성과 개혁을 내세우는 문민정부답게 그야말로 한점 의혹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철두철미한 조사를 해서 먼 훗날에 가서도 다시는 비자금 의혹설이 제기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완벽한 마무리가 지어질 것을 기대한다.
비자금설 조사가 몰고올 수도 있는 걷잡기 어려운 혼란과 파국적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냉엄한 현실이다. 그러나 사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발전했다. 국민감정이나 비등하는 여론이 조사의 한계를 용인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번에도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지 못한다면 그 후유증과 부작용은 실체규명이 몰고 올지도 모를 파문보다 더 심각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정부가 마음만 먹는다면 진상규명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수천만원이나 수억원 단위의 뇌물거래도 샅샅이 다 조사돼 꼬리가 잡히는데 수백억 수천억원의 거대한 뭉칫돈이 흔적도 없이 어디 잠복해 있거나 소리 없이 왔다 갔다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믿는게 일반 국민들의 상식이다. 검찰과 국세청, 은행감독원, 거래은행등이 총동원돼 반드시 진상을 밝히고 의혹을 해소시켜 버리고 말겠다는 결심만 확고히 가진다면 비자금설은 충분히 규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진상규명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의심받는 일이 없도록 진지하고 성실한 조사 태도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3백억원 차명 계좌의 실체를 밝히는데서부터 시작해서 그 돈의 실제 주인을 찾아내고 거기서부터 자금의 흐름을 추적해 나간다면 비자금 의혹설의 실체에도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국민감정과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해당 은행과 은행원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기대된다. 이름을 차명당한 사람들과 여러 관계자들의 양심선언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일로 날을 지새우는 국가적인 불행이 하루빨리 종식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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