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협주곡 「사계」로 유명한 바로크시대의 작곡가 비발디의 업적은 협주곡에서 3악장제를 확립한데 있다. 즉 빠르고 느리고 빠른 템포로 악장을 구성한 것이다.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등의 악장제를 채택하고 있는 장르의 음악에서는 대개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이 빠른 템포인 알레그로로 되어 있고 제2악장 혹은 제3악장은 느린 템포로 되어 있다. 느린 템포 악장의 악상표시는 대개가 「안단테」(걸음걸이속도)와 이보다 느린 「아다지오」, 또는 더욱 느린 「라르고」이다. 이중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안단테」와 「아다지오」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명곡 가운데서도 가장 빼어난 대목이 모두 느린 악장에 있다는 사실이다. 음악의 템포에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일까.
빠른 템포는 경쾌함 즐거움 열정 박력 절정감을 표현하기에 좋다. 반면 느린 악장은 서정성 슬픔 아늑함 내면을 파고드는 호소력을 전할 때 적격이다. 때문에 「노래하듯」이라는 뜻의 「안단테 칸타빌레」는 있어도 「알레그로 칸타빌레」는 없다. 베토벤의 교향곡 「전원」에서 그 유명한 「시냇가의 정경」도 제2악장 안단테이고, 드보르자크의 「신세계」에서 고향의 향수에 흠뻑 젖게 하는 제2악장도 라르고 템포이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들을 수 있는 클라리넷협주곡 역시 제2악장 아다지오로 세상의 마지막 독백인양 모차르트의 심경을 잘 비추고 있다. 그의 최고의 피아노협주곡 제20번, 21번 또한 느린 악장이 빼어나다.
현대는 모든 게 「알레그로 비바체」문화이다. 컴퓨터의 급속한 변화는 그야말로 「밤새 안녕」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때문에 현대인은 초테크의 능률주의, 엄청난 정보의 속도와 물량에 기가 질려 있는 것같다. 한국병의 하나인 「빨리빨리」문화도 실은 근대화의 산물이지 선조의 문화는 아니다. 선인들의 풍류와 멋은 어디까지나 여유작작한 「아다지오」문화였던 것이다.
최근 유명한 음반사들이 느린 악장을 발췌, 수록한 「아다지오」음반을 내놓아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다지오」 속엔 인생과 자연의 그윽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봄의 꿈, 가을의 독백, 겨울의 우수와 환상이 마음의 호수에 비친다. 특히 브람스의 4개의 교향곡, 현악의 실내악곡들, 클라리넷 5중주, 말러교향곡,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의 세계에서 느린 악장은 더없이 명상적이다. 음악 속에 가을을 묻자.<탁계석 음악평론가>탁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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