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등 공산체제가 붕괴된 후 전세계에서 겉으로는 「평화」를 내세우면서 몰래 무장간첩을 침투시키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다. 어제 북한무장군인 1명이 휴전선 남쪽으로 침투하려다 사살된 사건은 지난 50년간 추진해 온 간첩 남파와 대남 교란등을 통한 북한의 한반도공산화전략과 목표가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어느 면에서 이번 무장군인 남파사건은 북한의 대남자세가 「강경」으로 환원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은 70년대 이후 정치 및 위장 평화공세와 무장간첩·공작원침투를 주공 또는 보조공격책으로 혼합구사해 왔다. 7·4공동성명발표후 화해무드속에 땅굴을 팠고 83년 버마서 아웅산사건을 저지른지 몇달후에, 또 92년 봄 남북기본 합의서 발효후 총리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각각 부산다대포와 한강하류에 무장간첩을 남파했다가 생포 또는 사살당했음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번 경우 작년 10월 북·미 핵 타결과 올 6월 경수로지원합의, 15만톤 쌀지원, 그리고 저들의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기도등 일련의 화해공세속에 또다시 무장간첩남파를 기도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북한의 간첩남파배경은 몇가지로 들 수 있다. 먼저 김정일이 강경한 대남자세, 강력한 지도력을 과시하기 위해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 극심한 식량부족과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창건 50돌을 맞아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와 1백여만명의 군중집회를 연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음 군부 강경파들의 득세를 꼽을 수 있다. 김정일이 혁명1세대인 최광 이을설을 원수로 승진시키는 한편 최광을 인민무력부장에, 원로인 김영춘과 조명록을 인민군총참모장과 군총정치국장등에 기용, 재편한 군부는 사실상 강경파들로서 이들이 첫 대남도발기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밖에 66년 이후 한미양군이 해마다 실시해 오고 있는 현재의 독수리훈련에 대한 대응기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끝으로 대남적화목표와 기도가 변함없음을 과시하기 위한 내부용 이라고도 관측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배경과 속셈에서건 이번 침투는 북한이 내세우는 평화가 선전용의 가짜평화임을 보여준 것이다. 북한이 함께 서명하고 실천을 약속했던 기본합의서 4조는 남북이 상대방을 파괴·전복시키는 행위를 하지 않기로 되어 있음에도 버젓이 무장간첩을 보낸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국민은 북한의 속셈을 다시 한번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저들의 1백20만병력, 평양서 부산까지 도달하는 노동1·2호미사일, 1천톤의 화학가스등이 중국과 일본,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2의 6·25, 남한적화를 위한 것임을 직시하고 만반의 대응태세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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