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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각 남북관계 더 악화 불가피/북한 무장공비 침투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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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각 남북관계 더 악화 불가피/북한 무장공비 침투 파장

입력
1995.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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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도발·강경정책 불변 반증/쌀협상·경협등에 큰영향 예상17일 발생한 북한군의 임진강 철책선 침투사건은 최근의 남북상황에 비추어 상당한 파장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영삼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맞추어 우리 군에 특별 경계강화지시가 내려져 있고 한미 연례군사훈련인 독수리연습이 실시되고 있는 기간에 감행된 침투기도는 냉각된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일방적인 정전협정 폐기선언과 평화협정 체결공세에 이어 우리측의 쌀지원에도 불구하고 납북된 안승운 목사와 우성호 선원들의 귀환을 거부하는등 대남 강경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최악의 홍수 피해등으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으며 군 인사에서도 보수·강경파가 대거 등장하는등 강성기류로 치닫고 있다.

이같은 북한의 대내외적인 흐름은 남한과의 실질적인 관계개선에는 뜻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번 침투사건으로 그 의도가 더욱 명백해졌다고 봐야한다. 북한군은 올 들어 중부전선 비무장지대와 서부해상의 군사분계선을 몇차례 넘나드는 도발행위를 감행했고, 군사분계선상의 나무를 자르기 위해 정찰활동을 하다가 장교가 지뢰를 밟아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번 침투기도가 서부전선에서 벌어졌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서울과의 거리가 멀지않아 동·중부전선 보다 훨씬 예민하고 우리측 대응이 분명한 곳에서 침투를 감행한 배경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것이 관계당국의 분석이다. 이번 사건이 북한지도부 차원의 명령에 의한 것인지 특수전부대의 독자적 판단에 따른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 자극적인 행위는 변하지 않는 북한의 대남전략을 다시 한번 인식시켜 주고 있다.

북한은 이번 사건에 대해 전혀 반응을 나타내지않고 있다. 16일 중앙방송을 통해 한미연합 독수리연습을 『북침 전쟁연습이며 우리는 이에 대해 수수방관할 수 없다』고 위협한 뒤 침묵을 지키고 있다. 관영방송은 물론 휴전선의 대남방송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급랭국면을 맞고 쌀협상등 남북현안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그동안 우리측의 성의표시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남북관계를 긴장시켜온 만큼 우리정부도 더 이상 이를 좌시할수 없게됐다고 봐야한다. 3년여만에 또 다시 북한군이 침투중 사살된 마당에 쌀지원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쌀협상 외에도 경제협력등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 역시 당분간 실현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번 침투기도로 그동안 북한이 노려온 경수로 건설 지원과 미국 연락사무소 개설, 일본의 쌀지원등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호전적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관련국가들과 국제사회의 여론이 악화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손태규 기자>

◎무장공공비 사살장병 일문일답/“새벽안개속 인기척 뚜렷”/수색땐 잠잠 중단하면 또 활동 공비 판단/판초 우의입은 상체 드러나자 집중 사격

수훈을 세운 소대장 강혁준(23)소위와 초소근무병 정인제(22)상병 이종훈(21)이병등은 이념의 장벽이 붕괴되고 평화무드가 조성될수록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더 커질 것으로 보고 평소 철저히 대비해 왔다고 말했다.

―최초 발견시점과 당시 상황은.

(정상병)『새벽 1시25분께 초소앞 벼랑에서 풀잎을 스치는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시계가 5도 안될만큼 안개가 짙게 끼어 소리의 흐름에 귀를 기울였다. 야생동물이나 바람소리가 아니라 나뭇가지를 밟는 사람소리가 분명했다. 마침 순찰중이던 소대장이 도착해 철책 주위에서 40여분간 수색을 계속했다. 갑자기 판초우의를 입은 물체가 상체를 들며 오른손을 쳐들어 수류탄 투척으로 판단, 사격을 시작했다』

―사체에서 수류탄은 발견됐나.

(강소위)『70도의 급경사 지역이어서 총상을 입은 무장간첩이 강으로 추락하면서 물에 빠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상황이 긴박했을 텐데.

(강소위)『초소 밖으로 나가 수색을 벌이면 소리가 잠잠해지고, 수색을 중단하면 낮은 포복으로 기어오르는 소리가 또렷이 들리는 상황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무장간첩이 분명하다고 판단, 취침중이던 소대에 병력증원을 요청한 뒤 경계태세를 유지했다. 야간 긴급상황에서는 소대장이 최종 지휘관일 수밖에 없다. 「내가 흔들리면 철책이 뚫린다」는 생각이 들어 「침착하라」는 자기주문을 외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이이병)『내가 간첩을 잡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몹시 당황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반드시 잡아야겠다는 일념 외엔 다른 생각이 없었다. 초소에 투입되기 직전 수류탄 투척 소총사격등 강도높은 GOP 경계훈련을 1개월간 집중적으로 받은게 큰 도움이 됐다』

―사망원인은.

(강소위)『수류탄 2발을 투척한 뒤 사병 3명이 K2소총으로 1인당 25발씩 모두 75발을 발사했다. 경사가 심한 벼랑인데다 짙은 농무로 지향사격을 실시했는데 왼쪽 머리에 1발이 명중했다』

―간첩을 잡은 소감은.

(정상병)『내가 맡은 초소는 끝까지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항상 긴장하고 근무한 결과로 생각한다. 반복훈련을 통해 근·원거리 적 출현시 상황조치를 숙지하고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밤잠을 설쳐가며 열심히 도와준 선봉소대원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이이병)『자대 배치 2개월만에 간첩검거에 공을 세워 너무 기쁘다. 내가 긴장해야 고향에 계신 홀어머님이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근무에 최선을 다했다』<파주=고재학·권혁범 기자>

◎무장공비 침투일지

▲68년1월21일=124군부대 무장공비 31명 청와대기습을 목표로 서울침투, 사살29명 생포1명 자폭1명

▲68년10월30일=무장공비1백30명 울진 삼척에 침투, 사살1백10명 생포7명

▲69년 6월12일=흑산도에 간첩선침투 간첩15명사살

▲70년 4월8일=경기도 금촌에 침투한 북한공작원 3명사살

▲75년 9월11일=전북 고창에 무장공비 2명침투, 1명사살

▲76년 6월19일=중동부전선에 침투한 무장공비 3명사살

▲79년 10월11일=동부전선 비무장지대 무장간첩 3명침투, 1명사살

▲80년 3월23일=한강하구에 3인조 무장공비 수중침투, 전원사살

▲80년 11월3일=전남 횡간도에서 무장간첩 3명사살

▲80년 12월1일=경남 남해에서 무장공비 3명사살

▲81년 3월27일=강원도 금화에 3인조 무장간첩침투, 1명사살

▲81년 6월21일=충남 서산서 무장간첩선 격침, 9명사살 1명생포

▲81년 7월4일=임진강 상류에 무장공비 1명침투, 사살

▲82년 5월15일=동해안에 무장공비 2인조출몰, 1명사살

▲83년 6월19일=임진강에 3인조 무장공비침투, 전원사살

▲84년 9월24일=무장간첩 1명 대구에 출현, 시민 3명 살상후 음독자살

▲84년 10월20일=부산 근해서 무장간첩선 격침

▲92년 5월22일=중서부전선에 침투한 무장간첩 3명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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