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야마(촌산부시)총리의 한일합방 합법체결 망언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터져나온 「군국일본이 아시아를 구원했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일본유족회」 책자의 내용은 망발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다. 아무리 사설단체가 마련한 책자라고 하지만 일본의 양식과 역사의식 수준을 새삼 의심하게 된다.「대동아전쟁의 총괄」이란 책자의 내용을 보면 구구절절 일본의 오만이 드러나 있다. 「합병은 동양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것이다」 「합병까지의 화란은 모두 조선에 원인이 있다」 「헛 이름만 남은 나라를 합병했다」는 등의 모욕에 찬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아직도 잘못된 과거 역사속에 젖어 있는 그들의 자세에 소름이 끼친다.
일본은 지난 반세기동안 겸허하게 반성 사죄했다는 말을 되풀이해 왔다. 황후를 살해하는등 온갖 만행을 저지른후 나라까지 강점한 엄연한 역사적 사실까지도 이처럼 왜곡하는 일본의 역사의식 수준에서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집권여당인 자민당의 사려부족한 자세도 이를 뒷받침한다. 당총재가 책자를 만든 단체와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구입, 소속의원 전원에게 배포한 조치는 역사인식 결여의 한 상징이라고 할 것이다. 자민당의 「역사검토위원회」처럼 「우익」이란 비뚤어진 잣대로 역사를 보면 왜곡하게 되고 그 결과는 일본에 돌아가게 마련이다. 일본에 불고 있는 보수 우익바람을 걱정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본도 이젠 섬나라란 틀을 떨쳐버릴 때가 됐다. 제국주의 역사에 더 이상 향수를 갖는 것은 일본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반세기가 흘렀다고는 하지만 위장 반성과 사죄로는 과거청산이 될 수 없다.
한일합방만 해도 「형식적으로 존재했다」 「강제성과 불평등한 면이 있었다」고 말장난만 할 것이 아니다. 한일합방이 원천무효라는 선언없이는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 적당히 얼버무리는 것은 다시 망언을 낳고 한일관계를 원점으로 돌리는 일로 일본정부의 정확한 역사 및 상황인식이 요구된다. 국제화시대의 화해무드를 주도적으로 헤쳐 나가기 위해서도 한국국회의 한일합방 원천무효 결의채택과 예정됐던 양국 정상의 만남이 무산된 배경을 곰곰이 되씹고 매듭을 푸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한일관계가 냉각되는 것만 걱정해서는 안된다. 일본의 자세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다 합방조약의 무효선언은 언제 해결해도 해야 할 문제다. 근본적인 문제해결 없이는 바람직한 양국관계는 있을 수 없다는 인식에서 이번기회에 한일관계를 재검토하고 우리의 대일자세를 재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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