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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역사와 시의 역사/김정환의 「텅빈 극장」(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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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역사와 시의 역사/김정환의 「텅빈 극장」(시평)

입력
1995.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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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은 한 시대 우리 문단의 뛰어난 좌파시인이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저 80년대 초입의 칼날 아래서 쓰여졌던 그의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기억은, 어쩔 수 없이 새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그의 시를 무겁게 어깨 누르는 짐일 것이 틀림없다. 새 시집 「텅빈 극장」(세계사간)에서 그 78편의 5행시에 한결같이 리듬을 유지시키고 때로는 어지러운 선율을 넣어두려는 그의 노력은 이 기억의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바람과 관련되기도 할 것이다.과거의 무산된 열정에 감쪽같은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는 새로운 삶의 형식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텅빈 극장」은 예의 후일담문학과 많이 다르다. 그것은 제목이 암시하듯 부재의 시집이다. 패배를 분명히 인정한다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며, 그가 또한 그렇게 하고 있다. 어려운 것은 그 뒤에 남은 현실을 끌어 안는 일이며, 그것을 말하는 일이다. 「오늘 밤 별이 유난히 차고 지상에/구두만 여러 켤레 남아 문전성시다/고층건물의 키도 차다 그 끝에마저/불 꺼진다 그대에게 가는 길이/모두 닫힌다 내일 생전 첫 길이기를)(「별밤」). 과거를 부정하는 일이 과거의 모든 구속을 없애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전 첫 길」은 새 길일 수도, 새 삶일 수도 없다. 그러나 「…누에 실, 직전의 아슬아슬함으로, 해탈 직후까지/포착. 날래고 여성적인 기습, 또 포착」할 수 있는 「시안」이,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 길에서, 또는 「없는 것 사랑하기」를 통해 얻어질 수는 있다. 시인은 이 딜레마를 선택하면서 동시에 시를 선택한다.

그가 시를 선택하는 것은 단지 패배했기 때문일까. 「길이 출현하는 곳에 궤도가 경악한다/(…)우린 무엇을 이대로 그만둘 수 없는가」(「철길 2」). 그는 혁명가로서 궤도 앞에 길이 되고자 했다. 그는 이제 시인으로서 혁명가의 궤도를 경악케 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시인은 「만년후 우리 또 만나」게 될(「시청앞 세기말」) 미래의 혁명가일 수 있다. 다만 저 「없는 것 사랑하기」에서처럼 「그 사이 없는 것」을 기다리고 포착하기가 「너무 벅차다」. 이 벅참이 한 때 그에게서 혁명에 대한 증거였던 것처럼 이제 시에 대한 증거라고 우리가 믿을 수 없다면, 그렇기를 시인에게 요구할 수도 있겠다.

아니, 바로 자기였던 세계에서 생살이 찢기듯 떨어져 나온 이 시인에게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없다. 그러나 한국문학이 그 미적 감수성의 폭을 넓히고 그 형식을 날카롭게 다듬어 온 과정에서 그와 그의 동료들의 문학적 실천에 크게 빚진 바가 있다고 말한다면, 한 국외자의 마음 편한 이야기가 될까. 분명한 것은, 시인 자신이 「철길 1」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 정열의 한 시대가 전설이 아니라 역사이며, 그가 이제 쓰는 시도 역사라는 것이다.<황현산 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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