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중산층과 보수논쟁(최상룡 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중산층과 보수논쟁(최상룡 칼럼)

입력
1995.10.17 00:00
0 0

 요즈음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보수중산층」을 끌어 안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경우 보수가 무슨 뜻이며 중산층은 어떤 의미로 쓰는지 명확하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중산층은 한 마디로 규정해버릴 만큼 그렇게 단순한 계층이 아니다. 일정한 재산이 있기에 기득권에 관심이 있고 교양이 있기 때문에 비판적 안목도 있다. 그러기에 중산층은 일상생활의 안정을 바라면서도 문자 그대로 변화와 개혁을 추구한다.

 단지 그 변화는 체제의 변혁이 아니라 삶의 질을 위한 부단한 개선이요, 그 개선은 생활의 편의에 맞도록 구습을 바꾸는 것이다. 설령 중산층이 보수적이라 할 경우도 마냥 구체제를 지킨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체제가 썩을대로 썩고 절망적일 때 맨 마지막에 들고 일어나는 계층이 바로 중산층이기 때문이다. 중산층은 체제의 변혁을 시도하는 조직적인 운동을 명백히 거부한다. 그러나 중산층의 지지 없이는 구체제의 변혁이 어렵다는 것도 우리 역사가 증명하는 바와 같다. 4·19혁명이나 6월 민주항쟁에서도 끝맺음은 중산층의 참가로 가능했던 것이다. 요즈음 전개되고 있는 보수논쟁이 중산층을 겨낭한 것이라면 지극히 단세포적이다. 우리는 중산층의 신념체계인 자유민주주의가 반공, 반혁명을 위해서는 보수적인 역할을 했고, 반독재·반파시즘시대에는 혁신의 기능을 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과연 어느 세력이 중산층을 대변하느냐 하는 관점에서 보면, JP의 의기양양한 모습이나 DJ의 지나친 탈바꿈은 보기에 어색하다. 그리고 지난날 중산층의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던 YS가 과연 효과적인 중산층전략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원래 근대적인 의미의 보수주의는 중산층이 주도하는 시민혁명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사회주의혁명세력의 붕괴로 보수의 존재이유가 약해진 지금에 와서 보수가 중산층과 결합하는 모습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중산층이 보수의 흐름을 타고 있는지 몰라도 만약 그 보수가 부패나 무능과 결합하게 되면 중산층은 또 다시 체제비판세력으로 변할 것이다. 이처럼 중산층은 역사적으로 보수와 진보 사이를 자유부동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균형자로서 사회의 안전판이 되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의 안정을 중산층에서 찾았고 인간내면의 안정도 중간과 중용으로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 앞에 보수를 붙이는 이유는 우선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짐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가 시대정신으로 뿌리를 내렸고 우리 체제가 여러가지 구조적 결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이 필요할 정도로 부패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입장에서 볼 때는 혁명도 체제의 안정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며 따라서 혁명을 부를 만큼 체제가 부패했을 때 중산층은 바로 그 혁명에 가담했던 것이다. 따라서 중산층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중산층의 보수적인 측면에만 착안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자기정화기능을 강화하고 혁명이 무용할 만큼 부단히 체제의 자기개혁을 시도하고 그리고 미래의 양질의 삶을 위해 점진적으로 사회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색깔논쟁은 건설적인 요소라곤 하나도 없다. 보수논쟁이 주로 누가 더 반공을 했느냐에 환원되고 있는데 이 경우도 우리는 반공과 보수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전선에서 싸우면서 공산주의로부터 조국을 지킨 사람도 분명히 반공이지만 체제의 민주화에 헌신하여 자생적 공산주의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의미있는 반공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두 가지 추진력, 즉 산업화와 민주화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산업화 추진세력은 이른바 개발독재의 주역으로서 주로 보수적 성향의 효율주의자가 많고 민주화운동세력 가운데는 진보적 성향의 투사들이 적지않은 것도 사실이다. 반공투사와 민주투사는 그 계급적 이해관계나 이념적 성향이 다르긴 하나 둘 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세계가 주목하도록 만든 민족의 저력이다. 지금에 와서 새삼스럽게 이들이 색깔논쟁으로 이전투구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 민주화없는 반공투사만 있었다면 아직도 우리는 암울한 권위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산업화에 의한 경제적 토대가 없었더라면 이 정도의 민주화를 성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선의의 경쟁을 통하여 나라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 여야의 정치세력은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평균적인 국민, 특히 중산층의 일상생활과 직결된 개혁과 정책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선진국들은 대개 85% 이상의 중산층을 갖고 있다. 우리 국민도 중산층의 요구와 삶의 질을 위한 정책경쟁에서 이긴 세력 가운데서 21세기 한국의 지도자를 골라야 한다.<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