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에 돈가방 건네는 순간 기습/해머로 창부수고 소총난사 돌진【모스크바=이장훈 특파원】 모스크바 심장부에서 일어난 현대전자 연수단 납치 인질극 사건은 러시아 알파특공대의 전광석화와 같은 구출작전으로 단 20여초만에 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범인 사살·인질 전원무사」의 쾌거를 올리기까지의 9시간 17분간은 한국에 있는 인질가족과 회사, 모스크바의 한국인들 그리고 러시아 특공요원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막강한 테러진압 특수부대인 러시아연방보안국(FSB)산하 알파부대 요원들은 이날 새벽의 전격작전을 한치 오차없이 수행함으로써 서방세계에까지 널리알려져 있던 용명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음을 완벽하게 입증했다.
▷특공작전◁
현지시간으로 정확히 15일 새벽 2시47분. 성 바실리성당 앞 볼쇼이모스크바레스키다리 위.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서있는 벤츠관광버스를 향해 특급명령이 떨어졌다. FSB 미하일 바르슈코프국장과 연방 대테러센터 책임자 빅토르 조린장군은 현장 요원들에게 무선마이크에 나지막히 작전개시 신호를 보냈다. 일순 주변에는 숨죽일 듯한 긴박감이 엄습했다.
협상팀으로 가장한 요원 2명이 「돈가방」을 들고 인질버스의 운전석으로 다가갔다. 범인이 돈가방에 신경을 쓰는 사이 협상요원이 버스안에 섬광탄을 던져 넣었다. 『펑』하는 폭음과 함께 불빛이 번쩍이는 것을 신호로 버스뒤에 붙어있던 특공대원 8명이 버스 오른쪽으로 쇄도, 열려진 창문으로 연막탄을 던지며 진입했다. 눈 깜짝 할 사이였다.
이와 동시에 다리 뒤쪽에서 특공대원 12명을 태운채 대기하고 있던 트럭이 무서운 속도로 돌진, 날카로운 브레이크 파열음과 함께 버스왼편에 닿을듯 멎었다. 트럭에서 특공대원 2명이 튕겨 일어나면서 해머로 운전석과 승객석의 유리창을 부수는 것과 나머지 대원 10명이 버스안으로 몸을 날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범인은 특공대원들이 버스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권총 몇발을 쏘아댔으나 허사였다. 범인은 앞쪽 특공대원 2명이 쏜 총에 맞아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인질들에게는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인질구출◁
범인이 총에 맞아 쓰러지자 버스뒤편에서 달려온 검은색 밴에서 특공대원들이 쏟아져내려 버스안으로 돌진했다. 순식간에 상황은 끝났고 버스안은 특공요원들에게 완전히 제압됐다. 숨죽이며 특공작전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모든것은 찰나에 이뤄졌다.
작전에 걸린 시간은 정확히 21초. 첫 폭음과 함께 의자밑으로 몸을 숨겼던 현대전자 직원 4명과 유학생 가이드 서견수(28)씨, 러시아인 운전사 등 6명 모두에게는 상처하나 입히지 않고 끝난 귀신같은 작전이었다.
특공대원들이 인질들을 감싸안고 나오는 순간 수십미터 떨어진 곳에서 초조하게 작전상황을 지켜보던 김석규 주러시아대사와 리즈코프 모스크바시장, 수천의 시민들은 찬탄의 환호성과 함께 특공대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모스크바 항공대 서견수씨/무사구출 유학생 숨은공 있었다/범인자극않고 인질석방 계속 설득 연수단원에 상황설명 공포감 해소
한 유학생의 침착하고 정확한 상황판단이 자칫하면 큰 희생을 낼 수도 있었던 이번 인질 납치사건을 무사히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지옥같은 인질상황에서 풀려난 현대전자 연수단원들은 한결같이 현지 유학생 안내인 서견수(28·모스크바 항공대 4년)씨를 인질구출 작전의 「수훈갑 인물」로 평가했다.
서씨는 범인에게 『탈출비행기로는 군용기를 이용하라』는 등의 말로 범인을 안심시키면서 협상을 벌여 중간에 인질들이 풀려나게 하는등 인질의 신변안전에 최선을 다했다.
버스안에서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한국인은 서씨. 그는 범인과 대화해 나가면서 그때 그때의 상황을 연수단원들에게 알려줘 인질들이 공포감을 갖지않고 여유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그는 또 중간에 풀려난 인질들에게 범인의 심리상태와 대화내용을 알려 구출작전을 편 러시아 당국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상황이 종결된 뒤 대사관으로 온 서씨는 『사실 겁이 났지만 차분히 행동하면 모두 무사할 것으로 생각했으며 범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가능한한 자극이 되는 말을 하지 않았다』며 온몸을 떨었다.
그는 『4년전에 유학을 왔으며 아르바이트로 가끔씩 여행안내를 하고 있다』면서 『부모님이 걱정하실테니 신원은 밝히지 말아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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