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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본 각국 지도자(구동독정부 남북관계 기밀문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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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본 각국 지도자(구동독정부 남북관계 기밀문서:하)

입력
1995.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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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빨치산이래 오랜 숙적”/“전두환 정권은 박정권보다 더 심하고 더 사납다”/“등소평은 나와 친한 사람… 체르넨코는 서먹서먹”/“나카소네 수상직 계속땐 일군국주의 부활 우려”과다한 군사비 지출로 경제적 타격이 심했던 북한은 87년 남북한 병력을 10만명으로 줄이자는 제안을 되풀이했다. 실현성 여부와 관계없이 군사비 부담을 줄여보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한편 김일성은 호네커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평가의 일단을 내비치고, 애증이 엇갈리는 중국에 대한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았다.<편집자 주>

▷북한의 군축 제안 87년 7월◁

7월 23일 공개된 북한의 공식성명은 단계적으로 남북한의 전력을 감소시키자는 내용으로, 지금까지의 북한의 노력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다.

북한의 강석주는 자신들의 노력을 실현시키는 것이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북한은 계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여 한반도에서 완전한 무장해제가 실현되고 지속적인 평화가 보장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성명은 상호 군축을 통해 남북의 전력동등이 보장돼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원칙에 따라 북과 남은 88년부터 91년까지 3단계에 걸쳐 전력을 감소해야하며, 92년부터 병력을 10만 이하로 보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도 감축되어야 한다. 북한과 남한이 병력을 10만명까지 감축하면 미국은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군대를 남한에서 철수해야 하며 군사기지도 해체해야 한다.

북한과 남한은 단계적인 전력감축을 상호 통고해야 하며 이 사실을 전세계에 알려야 한다. 미국은 자국군대의 철수를 북한에 알려야 하며 이를 전세계에 공개해야 한다.

군사적 충돌의 위험을 막고 지속적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에 있는 비무장지대는 평화지역으로 바뀌어야 하며, 이곳에는 중립국의 감시군이 주둔해야 한다.

한반도에서의 전력감축및 전력철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88년 제네바에서 북한과 남한 그리고 미국간에 여러 측면에서 협의가 진행되었다.

이같은 제안은 김일성이 지난 5월 중국을 공식방문한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다. 덩샤오핑은 김일성에게 국민경제의 확대를 위해 군사비 지출을 재분배할 것을 제안했다. 북한이 암시하고 있는 것은 방어력 강화를 위한 엄청난 비용이 북한에 큰 경제적 부담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인민일보는 남한과 미국이 북한의 이같은 제의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반응을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인민일보는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통일을 촉진시키는 열쇠는 양측의 물리적인 군사력 감축과 미군철수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남한의 방송은 이 제안이 비현실적이고 선전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제안은 진지한 것이 못되고 북한이 군사분계선에서 전력을 강화한 조치를 은폐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김일성이 본 남한 지도자◁

▲77년 김일성―호네커 회담

김일성=박정희는 미첩보기관인 CIA의 요원입니다. 우리가 빨치산으로 활동하던 당시 박정희는 우리를 상대로 싸웠습니다. 소위 공화당이라는 정당 대표 정일권은 일본의 만주군 장교였습니다. 이들은 우리의 오랜 숙적인 것입니다. 일본이 패망한 후 이들은 미국사람들에게 붙었습니다.

호네커=박정희 정권과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의 관계가 관심을 끕니다. 우리 정보에 의하면 서독은 남한과의 협력관계를 심화하고 서독의 자본주의가 남한노동자대중의 약탈과 착취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서독의 실업자수가 1백만명을 넘어섰는데도 1만명의 남한광부와 간호원이 서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김일성=그들은 싸거든요.

▲84년 김일성 호네커회담

김일성=지금 남조선인민의 투쟁이 점점 격해지고 있습니다. 전두환정권은 박정희 정권보다 더 심합니다. 개에는 성질나쁜 개가 있고 사나운 개가 있습니다. 전두환 정권을 개에 비유하자면 매우 사나운 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주한 미군사령관은 전두환과 베트남전에서 베트콩에 맞서 싸운적이 있습니다. 전두환은 레이건이 총선에 출마했을 때 기부금을 바쳤습니다. 레이건은 대통령이 되자 남한병력의 증강을 위해 우선 전두환을 초청했습니다.

전정권은 남한의 민주정당들을 우리의 조종을 받는다는 구실 아래 해체했습니다. 미국이 현재 전두환정권 대신 다른 사람을 대통령자리에 앉히려고 생각중이라는 소문이 나돕니다.

한마디로 말해 미국이 남조선을 점령하는 한 한반도통일의 가능성은 적습니다. 미국이 통일을 원치않는다는 것을 전세계에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평화제의가 필요합니다.

▷김일성의 중국관◁

▲77년12월9일 김일성―호네커 대화

김일성=우리가 중국과함께 대항해 싸운 것은 일본 뿐이 아닙니다. 45년이후 중국 혁명기(국공내전)에 많은 조선인들이 함께 싸웠습니다. 우리는 일본군에게서 빼앗은 무기를 중국 인민해방군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우리는 정예군과 병기도 지원했습니다. 조선인민해방군은 중공군과 함께 하이난(해남)도, 다시말해 중국의 끝까지 가서 싸웠습니다. 그래서 중국동지들은 중국 강에는 조선인의 피도 흐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중국이 인민내부의 분열(문화혁명)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리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중국은 매일 아침 5시부터 12시까지 확성기로 우리를 개량주의자라고 비방했습니다. 중국은 대국이기 때문에 확성기도 많습니다. 조선사람들은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38선에서는 미국인들이 확성기로 비방방송을 합니다. 가히 확성기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5년 내가 중국에 갔을 때, 그들은 공동성명에 패권이라는 말을 삽입하려 했지만 내가 반대해 이 말이 빠졌습니다.

▲84년5월31일 호네커―김일성회담

김일성=등소평은 70회생일을 맞은 82년 나를 비공식 방문, 호요방을 중국 공산당의 신임 서기장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나는 호요방에 대한 인상이 처음부터 좋았습니다. 호는 내가 소련을 방문하면 중국이 소련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한다고 해서 그것이 소련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모택동과 주은래는 미국 일본측과 회담할 때마다 나에게 알려주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과거 중국에는 반소운동이 많았습니다. 69년 우수리강 유역에서 중소충돌이 있었을 때 우리에게도 여파가 미쳤습니다. 내가 시골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인민무력부장이 전화로 다급히 중국군대가 두만강을 건너 북한영토로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렸습니다. 당시 나는 발포명령을 내리지 않고 그들을 더 접근토록 해 북한영토에서 생포하라고 지시 했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그곳으로 출동시켰습니다. 그러자 중공군은 퇴각했습니다.

중국의 늙은 지도자들은 물러났고 새 지도부는 소련과의 갈등을 원치 않습니다. 구세대 지도자중 유일하게 남은 등소평은 나와 친한 사람으로 그 역시 소련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안드로포프동지는 세번 만나 잘 알고 있지만 체르넨코동지는 처음 만났습니다. 그와의 회담에서 얼마나 깊이 얘기해야할지 몰랐습니다. 호네커동지, 체르넨코동지를 만나면 소련과 중국이 다시 만나는 문제를 얘기해주십시오.

호요방은 일본방문에 대해 나에게 얘기해주었습니다. 일본은 지금은 군국주의에 대해 관심이 없지만 누가 집권하고 있는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집니다. 나카소네는 호요방에게 『미국 때문에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지금 미국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은 사실이나 미국의 하인이 되지는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하고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부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합니다. 나카소네가 계속 수상직에 있는가, 아베가 수상이 되는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중국은 아베가 수상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호네커의 방중 결과보고 86년 10월◁

호네커는 86년 10월21일부터 26일까지 중국을 방문, 등소평 호요방등 중국 최고지도부와 회담을 가졌다.

중국은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과 관계를 재수립하고 이를 계속 발전시키려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소련과 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존중하며 이를 해칠 마음이 조금도 없다고 밝혔다. 중국은 70년대초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투쟁을 강조하는 것을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 고위급 대표들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모택동사상 고수가 중국 공산당 정책의 4대 기본원칙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들은 모택동의 업적과 잘못에 대해 구별된 태도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문화혁명 때문에 10년정도 발전이 뒤졌으며 그렇기 때문에 신속한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런 맥락에서 중국은 경제개혁 정책및 개방정책을 통해 2000년까지 생산을 4배 증대하려는 계획을 설명했다.

호요방은 베트남전쟁에 수십만의 군인들과 인재를 파견했음을 시인했다. 그는 중국이 베트남에 2백억달러 상당의 경제및 군사원조를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1만명 이상의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호요방은 중국이 절대로 필요없는 곳에서는 투쟁을 하지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및 일본, 그리고 서유럽등과 협상을 하고있다고 했다.

등소평은 10년간의 참혹했던 문화혁명이 막을 내린 직후에 중국은 당 전체와 인민전체를 결속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으며, 국제문제에 있어서도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등소평은 중국이 과거 국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실수도 있었음을 인정했다. 동독과의 관계에서도 불미스러운 일들이 간혹 있었다. 중국은 과거사를 묻어두고 미래를 내다봐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등소평은 말했다. 그는 호네커에게 호요방과 조자양에게 많은 정보를 얻으라고 말한 뒤 구체적인 문제는 거론하지 않은채 식사를 제의했다.

등소평은 중국의 두가지 과제는 평화를 유지하는 것과 국가건설 작업을 진척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등소평은 핵구름의 위협은 어느 나라고 피해갈 수 없으며 3차 세계대전이 터지면 중국도 같은 처지가 되겠지만 유럽이 일차적인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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