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지역구출신 현역의원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잇따라 15대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나서 정가에 화제가 되고있다.사실상의 정계은퇴나 다름없는 이들의 불출마선언은 정치판의 속성상 퍽 이례적인 일이라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고있다. 물론 이들중에는 지역구 사정이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표밭 형편이 별로 나쁘지않고 자질면에서도 큰 흠이 없다는 평판을 받아왔다.
이들이 정치판을 떠나려하는 변을 들어보자. 먼저 A의원은 『정치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지역감정이나 부추기고 역사를 역행하는 정치현실이 개탄스러워…』라며 김대중·김종필씨등 두김씨를 겨냥했다. 또 B의원은 『개혁과 변화에 맞는 훌륭한 후진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결심」배경을 설명했다. 이처럼 저마다 내건 명분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목이 많다.
그러나 이들의 「쉽지않은」 결심을 부추긴 보다 큰 요인은 최근의 정치세태에 대한 회의라고 해야할 것같다. 한마디로 정치나 「금배지」가 예전과는 달리 별로 매력적인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슨 연유일까.
○법·현실 괴리감
우선 까다롭기로 소문난 통합선거법이 부정과 타락의 제도적 차단장치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선거법의 손길이 닿지않는 부분은 도처에 있다. 『당위와 현실사이의 엄청난 괴리에 대한 자괴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는 한 의원의 지적은 이를 반영한다. C의원은 사석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통합선거법대로 선거를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라며 그 이유로 달라지지 않은 유권자의식을 꼽았다.
예컨대 선거철이 다가옴에 따라 의원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각종행사며 음식상을 차리거나 간단한 선물꾸러미라도 준비하지 않으면 모이지 않는 「사랑방좌담회」가 이들 의원들의 마음을 짓누른다고 한다. 주말이 되기가 무섭게 지역구를 찾아가는 귀향활동의 주된 일과가 주례서는 일 아니면 상가를 찾아 억지술을 마셔야 하는 상황에서 무슨 보람을 느낄 수 있겠느냐고 혀를 차는 의원도 적지않다. 의원을 고작 지역민원 해결사나 문상객으로 전락시키는 현실아래서 탈정치현상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사정은 멀리 미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최근 외신은 미상원의 샘 넌군사위원장(민주·조지아출신)의 충격적인 정계은퇴선언을 전하고 있다. 한때는 클린턴의 강력한 라이벌이자 만약 남부가 지미 카터이래 대통령을 낼 수 있다면 가장 확실한 대안이라고까지 했던 그의 돌연한 은퇴선언은 내년중간선거에서 상원 다수당의 위치를 탈환하려던 민주당의 꿈을 여지없이 꺾어버렸다고 한다.
공화당까지도 『아까운 사람』이라며 재고를 요청할 정도로 그의 불출마선언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욱이 그가 출마를 포기한 「여덟번째」 민주당출신 상원의원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같다.
그가 탈정치를 선언하면서 내뱉은 『워싱턴이 싫다』는 말의 행간에는 재선을 위한 펀드 레이징(선거자금모금)의 어려움등이 담겨져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유권자에도 책임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치를 하는데 과분한 자금수요가 있는 한, 또 유권자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정치로부터의 「액서더스」행렬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이들의 퇴장은 전환기에 처한 한국정치의 현실을 웅변으로 보여주면서 요즘 정치권의 화두인 세대교체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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