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남한 승인말라” 소에 주문/“무역관계 이해하나 수교는 안된다” 요구하기도/84년방소 김일성 “앞으론 김정일·강성산에 위임”/비동맹국에 남한 정치·경제적 영향력 차단노력/주간한국 입수 보도 17일 발매김일성은 북한의 체제위협을 감지하기 시작한 84년 소련과 동구를 순방했다. 그의 소련방문 결과를 자세히 기록한 구동독 기밀문서에는 권력의 부자세습의사를 공식화한 내용이 들어있다. 동독이 내부용으로 86년 작성한 북한외교평가보고서는 북한이 과다한 군사비 지출로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 외교의 첨병이었던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의 북한방문 보고서에는 북한이 소련과 한국의 수교를 강력히 반대하는 대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편집자 주>편집자>
○김일성 방소 보고서/84년 5월
김일성을 수반으로 한 조선인민주의 인민공화국 수뇌부의 소련 방문은 소련공산당과 북한 노동당과의 관계및 양국간의 관계 확대를 위해 이루어졌다. 김일성은 소련과 북한간에 발생한 몇가지 문제로 솔직한 논의가 필요했다.
소련의 체르넨코 서기장과 김일성은 유럽 안전보장을 위해 바르샤바 조약국들이 많은 이니셔티브를 취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김일성은 사회주의 국가들간의 계속적인 결속과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사회주의 구축시의 소련의 경험들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희망을 피력했다.
김일성은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미국 일본 남한간의 블록 결성계획이 안고있는 위험에 대해 우리와 비슷한 관점을 표명했다.
김일성은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좋은 편」 이라고만 밝혔다.
북한이 캄보디아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입장에 대해서는 유감의 뜻 표명이 있었고, 중국이 베트남 국경지대에서 한 도발행위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평가만 있었다.
북한에게는 소련과 중국간의 관계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었다. 중국 지도부는 일본이 군사대국화를 꾀하고 있지않다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 등소평은 레이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미국의 중무장을 「확실한 강경책」이라고 말했다. 김일성은 중국이 인구 10억의 가난한 나라이며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현대화에 필요한 원조를 얻을 계산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면서 김일성은 남조선을 공격할 의도가 전혀 없다고 특히 강조했다. 김일성은 한반도 문제를 미국과 남북한이 참여해 논의하자는 3자회담을 제의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회담참여를 주장하고 있다. 소련측은 긴장완화, 주한미군 철수, 외부개입 없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등에 찬성을 표명했다.
회담에서는 한반도 문제가 미국 중국 일본 사이에서 정치게임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는데 대해 주의가 환기되었다. 미국은 중국 지도부에 한반도 문제가 미국과 그들의 동맹국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되도록 종용하고 있는데, 이는 한반도 문제가 한국인들의 등 뒤에서 결정될 위험을 야기하는 것이다. 북한은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을 어느 정도 불안해하고 있는 것같았다.
김일성은 공식회담 이외의 대화에서 북한지도부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방문이 자신의 마지막 외국 방문이며 앞으로 김정일과 강성산 총리가 자신의 위임을 받아 외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김일성은 당 수뇌부와 국가 지도층에 젊은 인재들이 등용되었고 이들은 김정일의 지도하에 일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소련은 북한과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한 회담을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북한 외교정책 평가/86년 동독 당중앙위 외무위를 위한 보고
북한의 외교정책은 사회주의 노선을 발전시켜 나가고 한반도 통일을 위한 자신들의 노선에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를 위해 사회주의 국가들과 남한의 외교관계 수립을 막고, 비동맹국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고 남한의 정치 경제적 영향력 유입을 차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북한은 산업과 농업을 집중적으로 장려해 안정적인 사회주의 국가로 발전하려 하고 있으나 제국주의적 대립및 군사력 증강정책으로 위협받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평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북한은 복잡한 경제적 상황을 타개하고 야심찬 사회주의 건설 10대전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주의 국가들의 국제분업에 폭넓게 참여해 이들 국가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해야 했다.
북한은 미국의 극동중시 전략과 한·미·일 3국의 동맹 결성노력등으로 인해 새로운 위협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남한은 외교정책을 미국의 노선에 맞추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미국의 대리인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남한은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접촉증대를 통해 북한의 국제적 입지를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의 남한과 미국및 일본에 대한 정책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남한과의 접촉을 활발히 하며 외교적 승인의 문턱에까지 와 있다.
미국 일본 중국은 상호관계를 증진해 나가는데 잠재적인 장애요소가 되는 한반도 문제를 최소화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가 한반도 문제로 인해 어려워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북한은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레이건 대통령 사이의 제네바 정상회담 결과및 의미에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 북한은 소련과의 우호협력 관계를 강화해 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김일성은 소련과 우호관계를 과시해야할 이유로 제국주의의 대립주의 정책과 남한과 미국및 일본에 의한 군사적 위협에 직면한 상황등을 들고 있다.
북한은 한반도 통일이 전 민족적 차원에서 주권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북한의 목표는 전적으로 통일에 맞춰져 있다. 김일성은 『조국통일이 우리 생전에 이뤄지지 못한다면 대를 이어 노력해 김정일시대에 이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셰바르드나제 방북보고
▲86년=김일성과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과의 회담에는 김정일도 배석했다. 북한 지도부는 84년 소련과 동구권 순방이후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협력을 공고히 하는 노선을 고수하려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북한 지도층 인사들은 다른 동맹국들과의 관계확대와 개선 없이 내무및 외교정책에서 목표를 달성하고 경제및 군사분야에서 남한과의 점점 커지는 격차를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북한은 아시아 안보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 아시아회의를 소집하자는 고르바초프서기장의 제안을 지지한다고 거듭 밝혔다.
북한은 주한미군의 철수와 남한내의 미군기지 해체 없이는 한반도 통일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남한을 국제무대에서 고립시켜달라는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 북한은 소련과 다른 동맹국들이 서울 올림픽 참가를 거부할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북한은 남한이 북한의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소련이 올림픽에 참가할 것이라는 암시를 하지말고 가능한 한 입장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강력히 부탁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이 올림픽 불참과 공동개최를 주장하는 북한의 입장을 지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소련에 주문했다.
▲89년=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북한 방문기간에 김일성, 김정일, 정치국 의장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사무총장, 김영남외교부장등과 회담을 가졌다.
북한과 소련의 관계가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으나 무역과 경제협력에 있어서는 일련의 결함과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소련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북한이 취하고 있는 긴장완화및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제안에 연대감을 표명했다.
김일성은 고르바초프서기장이 유엔연설및 블라디보스토크와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밝힌 아시아·태평양 정책 노선을 지지했다.
소련은 남한을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할 의도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김영남외교부장은 상당히 날카로운 어조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남한의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들과 남한과의 접촉이 한반도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남북대화를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이 돈 때문에 사회주의를 배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은 소련이 남한과 무역관계를 맺게된 이유를 이해한다고 했으나 남한을 외교적으로 승인하지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견지해 달라고 주문했다.
◎북한 84년 권력승계 시작불구/내부문제로 유훈통치 계속될듯
구동독문서는 김정일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을 통해 현재 북한체제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몇가지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84년 5월 소련및 동구방문길에 오른 김일성은 체르넨코 소련 당서기장에게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이는 김정일체제에 대한 소련의 승인을 요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일성은 체르넨코에게 이번이 자신의 마지막 외국방문이라면서 앞으로는 김정일이 자신의 위임을 받아 외국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일성이 사망한 현재까지 권력승계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83년 중국방문 이후 김정일의 공식적인 해외방문은 한차례도 없었다.
이같은 의문과 관련한 구동독정부 관계자의 증언이 있다. 김일성은 89년 국제적 공인을 받을 목적으로 김정일의 동독방문을 추진했으나 국가원수급 의전을 요구한 나머지 무산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김정일의 해외방문에 대해 외교부등 북한 당국자체가 회의적이었다는 주장이다.
김정일은 86·89년 아시아순방길에 북한을 방문한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을 만났다. 이 만남에서 셰바르드나제는 남한과 국교수립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불과 1년 뒤에 한·러수교가 이뤄진다.
김정일이 권력을 공식으로 승계하지 못하고 「유훈통치」만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북한 권력내부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유승우 기자>유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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