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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 대응과 평가(구동독정부 남북관계 기밀문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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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 대응과 평가(구동독정부 남북관계 기밀문서:중)

입력
1995.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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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88올림픽 공동개최” 애절한 호소/불참만류 뿌리친 동독 “사상최대 성공적 대회” 평/김일성 “사회주의 비관말자” 체제경쟁 패배 인정/헝가리 배신 우리 인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나/주간한국 입수 보도 17일 발매김일성은 88년 평양의 주석궁에서 호네커 동독 공산당서기장 부인 마르고트 호네커여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사회주의의 황혼을 강하게 암시했다. 84년 이미 팀스피리트 훈련 대응등으로 북한경제가 피폐해졌음을 시인한데 이어 세계사의 조류가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한편 북한의 대표적 이론가 황장엽 노동당 비서는 동독 공산당 헤르만 악센 사무총장에게 편지를 보내 서울 올림픽불참을 요구하며 올림픽 공동개최 추진을 도와달라고 요구했으나 동독은 서울올림픽에 참가한 뒤 서울 올림픽이 역대 올림픽중 가장 성공적인 대회였다고 평가했다.<편집자 주>

○김일성·호네커 부인 대담/88년 11월3일

슐츠 미국무장관이 『사회주의는 체제로서 패배했으며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실패했다』고 주장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동쪽에서, 동독은 서쪽의 최전선에서 투쟁하고 있다.

비관주의적인 생각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는 낙관주의자들이다(이 말을 김일성은 두차례나 반복했다). 혁명정신 속에서 계속 새로운 세대들이 교육받고 자라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고트여사의 방문은 적기에 이루어졌다. 현재는 전쟁속에서 적들에 대항해서 싸웠던 때에 비하면 훨씬 유리한 상황이다. 물론 (내부에)혁명의 배신자들도 있지만 이러한 자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어떤 모델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변화의 필요성은 전혀 없다. 지금 조선노동당은 할 일이 많다. 우선 인민들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주는 것이다. 앞으로 전진하는데 문제점이나 실수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로부터 성취하는 것들을 과소평가하거나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한반도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지금 남조선의 학생들은 주한미군 철수와 괴뢰정권 퇴진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들은 단시간에 실현할 수 없는 것들이다. 조선노동당은 이러한 투쟁을 정치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군사적이나 혁명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 않다.

비관주의적인 생각을 할 이유가 없다. 우리편에는 민중이 있다.

남조선측에서 정상회담 제의를 하고 있는데,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가 내놓았던 제안이다. 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남한측이 결실있는 대화를 하는데 관심을 보여야하며, 중요한 것은 상호불가침조약, 군축과 같은 것들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남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미국의 남한점령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호네커동지와 같은 노련한 혁명가가 독일사회주의 통일당(SED)을 지휘하고 있는 것은 행운이며, 확실한 결속을 보여주는 동독측에 감사하고 있다.

마르고트 호네커는 김일성과의 대담에 이어 최태복 당비서를 만나 당시 남측에서 일어나고 있던 민주화운동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녀는 최비서를 김일성의 대외회담을 준비하는 유일한 인물이라며 그의 영향력을 높이 평가했다. 다음은 최가 마르고트 호네커에게 한 대화요지.

반미주의가 남조선 인민들에게 깊게 뿌리박혀 있지만 반공주의도 깊게 박혀있다. 현재 남조선의 투쟁방향은 미군철수, 민주화 실현과 통일등 3가지이지만 모두 아주 길고 어려운 싸움이다. 이에 대해 어떠한 망상도 갖지 않는다.

북한은 사회주의에 관한 어떠한 이론도 용납하지 않는다. 헝가리가 남조선과 무역대표부를 설치키로 한 것은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우리는 그동안 인민들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회주의 동맹국들을 의지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이제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 것인가.

○동독의 서울올림픽 평가/88년 10월

서울 올림픽은 커다란 정치사적인 의미를 지니는 세계적 사건임이 입증됐다. 1백60개국에서 9천6백25명의 선수와 3천9백99명의 임원이 참가한 서울 올림픽은 역대 올림픽사상 최대의 성공을 거두었다.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올림픽 이념은 다시 생명력을 얻었으며 올림픽운동이 평화의 보장, 긴장완화 및 제민족의 상호이해를 증진하는 데 커다란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탁월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소련과 동독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올림픽에 참가함으로써 올림픽경기가 사회주의의 대화정책 및 적극적인 긴장완화와 군축노력등의 일환으로 편입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남한의 올림픽 주최자들은 매우 현대적이고 합목적적인 경기시설 및 훌륭한 조직력을 통해 수준높은 경기주최를 위한 기초를 마련했다.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들은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운영되었다. 올림픽조직위의 임원들은 인내심 있고 상냥하며 우호적으로 행동했고 동독에 대해서도 그랬다.

남한은 올림픽경기를 외교 및 내정을 위한 주요 목적들과 결부시켰다. 올림픽을 통해 고도로 향상된 경제력을 내보였고 국가적 위신을 외교적으로 평가절상하려 했다. 남한의 이러한 노력들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남한은 또 올림픽을 내부정치에 이용, 정부의 시책과 국민 사이의 일체감을 강화하고 모순을 은폐하는데 이용했다. 남한은 주최국으로서의 이점을 투기종목이나 구기종목에서 대중정치적으로 활발하게 이용했다. 남한이 경기의 개최를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목적설정과 결부시키고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남한의 대중매체들은 구소련과 동독 및 미국 사이의 스포츠 대결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미국 스포츠맨들의 태도는 여론에서 반미주의적인 분위기를 낳았다.

국제적인 대중매체들은 서울 올림픽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며 1만4천명이라는 사상최대의 보도진이 취재경쟁을 벌였다.

○황장엽 동독에 편지/85년 6월

제24회 서울 올림픽에 대한 북조선 노동당의 입장을 알리며 도움을 청하고자 한다. 서울 올림픽은 한반도 분열정책의 일환이며 사회주의에 대항하고 자본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두개의 조선」을 영구화시키려는 반공운동이다.

미국과 남조선의 집권자들은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함으로써 남조선정권의 위상을 높이고 남조선 권력이 조선반도의 가장이며 남조선은 독립국가라는 국제적인 인정을 얻으려 하고 있다.

서울 올림픽은 미제국주의와 남조선 꼭두각시 정권의 공격적인 분열노선에 이바지할 뿐 아니라 남조선 주민들의 정당한 투쟁을 탄압할 핑계를 제공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 올림픽은 단순히 스포츠경기의 차원을 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우리 당은 조선반도에서의 공산혁명과 사회주의를 진작시킨다는 관점에서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데 반대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이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올림픽이 분열되고 스포츠 발전이 저해되리라는 회의감을 표시하고 있다.

우리 당은 이 문제를 숙고한 결과 쿠바의 카스트로 서기장이 제안한 것처럼 서울 올림픽을 남북이 공동주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는 서울 올림픽을 「한국올림픽」이나 「평양―서울 올림픽」으로 부르고 경기를 평양과 서울에서 반반씩 개최하며 북남 단일팀이 참가하는 게 좋을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이것이 올림픽을 제국주의자들이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위한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본다.

서울 올림픽까지는 아직 3년이 남았고 이 기간에 전세계의 진보적인 국가들이 적극적인 투쟁을 벌인다면 음험한 기도를 분쇄하고 평양과 서울의 공동개최를 실현할 수 있을것이다.

적들의 기도에 대항하지 않고 벌써부터 서울 올림픽 참가의사를 밝힌다면 이는 적들의 입장을 강화시키고 우리를 곤경으로 몰아 넣는 것이다.

만약 미국과 남조선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회주의 국가들은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경우처럼 집단적으로 폭력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며 남조선 단독개최에 반대해야 한다.

◎80년대말 개혁바람에 위기감속/김·호네커 “사회주의 고수” 고집/동병상련 외로운 동지관계 유지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고 동구권 붕괴가 시작된 80년대말, 김일성과 호네커는 개혁을 거부하고 서로를 의지하는 외로운 동지관계에 있었다.

주간한국이 입수한 구동독정부의 기밀문서에는 주변환경의 변화에 강한 위기의식을 느끼면서도 기존체제를 지켜보겠다는 두 사람의 고집이 기록돼 있다.

86년까지 세차례의 정상회담 대화록(한국일보 12일자 1, 11면)은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한 확신에 차 있다. 그러나 함께 입수된 88년 김일성과 호네커 부인 마르고트의 면담기록, 동독정부의 서울 올림픽 참가보고서, 85년 황장엽 당비서가 동독 공산당 헤르만 악센에게 보낸 서한등에는 위기의식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구동독은 이와 함께 86년 당 중앙위 외교위원회에 제출한 평가보고서, 84년 김일성의 소련방문에 대한 정보보고서등에서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으로 북한의 정세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구동독은 이미 84년 시점에서 북한의 경제개발 계획이 전면적으로 차질을 빚을 것이며 무역에서의 공급지연으로 동독경제가 피해를 받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88년 11월8일 마르고트 호네커와의 만남은 김일성이 동독관계자와 가진 마지막 면담이 됐다. 이로부터 9개월 뒤인 89년 10월18일 호네커는 국가평의회 의장과 공산당 서기장직에서 사임, 18년 권좌에서 쫓겨났다.

김일성은 마르고트에게 『비관적인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을 두 차례나 반복, 체제의 패배를 사실상 시인하고 있다.

황비서는 85년 서한에서 올림픽 공동개최에 대한 지지를 애절하게 호소하고 있으며 최태복 당비서는 마르고트에게 『헝가리의 배신을 우리 인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고 반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은 개혁의 가능성을 『변화의 필요는 없다』는 한마디로 거부했다. 같은 면담에서 최비서도 『사회주의에 관한 어떤 이론도 용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호네커 역시 마지막까지 사회주의체제 고수를 시도했지만 결국 91년 구소련으로 탈출, 독일로 송환돼 수감됐다가 유배지 칠레에서 93년5월 비참한 말년을 맞았다. 김일성은 94년 7월8일 묘향산별장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지만 변화는 필요없다는 유훈통치는 지금도 북한에서 계속되고 있다.<유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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