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잠복 불씨」 현안으로 재부각/조약 개정새로 체결에는 소극적한·일합병조약이 합법적으로 체결됐다는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일본총리의 망언 파장이 한일 국교정상화 조약 해석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공로명 외무장관이 12일 야마시타 신타로(산하신태랑)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한일 기본조약 제2조에 대한 일본측의 해석 변경을 공식 요구함으로써 65년 체결된 한일 기본조약의 해석에 관한 논란이 양국간 현안으로 재등장한 것이다.
공장관은 이날 야마시타대사와의 면담에서 무라야마총리의 망언은 한일합병에 대한 양국의 역사인식이 다르고, 그 결과 기본조약 제2조에 대한 해석이 엇갈린데서 비롯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1910년 8월22일, 또는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이 체결한 모든 조약은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한일 기본조약 제2조의 「이미 무효」라는 표현을 둘러싼 해석차이는 갈등의 불씨가 돼왔다. 65년 기본조약 체결당시에도 이 조항에 대한 양국의 입장은 첨예하게 맞섰고, 때문에 「이미 무효」라는 표현 자체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즉 조약상에는 애매하게 표현해 놓고 양측이 각기 자신의 입장에 맞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다는 것이다.
우리측은 한일합병 조약등이 한국민의 의사에 반해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체결됐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밝힌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일본측은 기본조약 체결이후 줄곧 합병조약 체결 당시에는 합법적이었으나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 시점에서 무효가 된 것으로 해석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무라야마총리 이전 한일합병조약의 합법성을 주장한 사토(좌등)총리(65년), 나카소네(중증근)총리(86년)의 망언 배경에도 이같은 입장이 도사리고 있다.
정부가 무라야마총리의 망언을 계기로 이제까지 사실상 묵인해오던 일본측 해석을 문제삼고 나선 근거는 「상황변화론」이다. 5·16 군사쿠데타 정권하에서 한일 기본조약이 체결됐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국민의 정치적 의식이 성숙해 이러한 여론의 비판적 대일관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한일 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로의 발전을 지향하고 있는 만큼 한일합병조약에 대한 엇갈린 해석도 이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러나 기본조약 자체를 고치거나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이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야마시타대사는 즉답을 회피한채 『무라야마총리의 발언취지가 잘못 이해된 것 같다』는 변명성 발언으로 일관, 일본이 해석을 변경할 뜻이 없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따라서 한일합병조약의 합법성에 대한 양국의 갈등은 앞으로 장기간 현안으로 남을 공산이 크며, 또 북·일간 수교협상에서도 핵심적인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태성 기자>고태성>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