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법원 “국가도 40% 책임” 판결/행정당국 인재 간접인정·제약사 책임 60%/6년 끌어온 대표적 약화논쟁 해결에 물꼬오랫동안 국민적 논란을 빚어온 일본의 「HIV소송」이 지난 6일 도쿄와 오사카 지방법원에서 동시에 내려진 1심판결로 해결의 물꼬가 트였다.
제약회사가 수입, 판매한 비가열 혈액제제에 의해 에이즈바이러스(HIV)에 감염된 혈우병환자와 가족들이 국가와 제약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문제의 「HIV소송」은 일본의 대표적인 약화 논쟁인 동시에 보건행정의 책임한도를 본격적으로 따지는 것이었다.
이 소송을 두고 도쿄와 오사카지방법원은 같은날 국가와 제약회사가 화해금을 지급하고 화해할 것을 권고하는 판결을 통해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지적했다.
「제약회사가 6할, 국가가 4할을 부담해 1인당 4천5백만엔의 화해금을 지급하라」는 법원의 판결은 직접행위자가 아닌 국가에 4할의 부담을 지웠다는 점에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 판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89년부터 도쿄지방법원에 7차에 걸쳐 1백18명, 오사카지방법원에 13차에 걸쳐 1백1명의 피해자가 제기한 문제의 「HIV소송」은 소송의 최종결과보다는 재판진행의 속도가 관건이었다. 도쿄는 제4차 47인에 대한 심리가, 오사카에서는 10차 71인의 소송이 겨우 결심된 상태에서 원고 2백19명중 93명이 벌써 불귀의 객이 됐다.
「피해자들이 한사람이라도 더 생존해 있을 때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주장이 폭넓게 제기됐고 이번 법원의 판결이 「조속한 화해권고」로 귀결한 것도 그런 고려에서 비롯됐다.
법원의 판결중 국가의 책임지적과 함께 주목을 끈것은 특히 83년 여름 이후의 감염에 대해 「혈우병환자의 에이즈감염이 주로 혈액이나 혈액제제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당시 과학자의 상식이었다」고 밝힌 것이다.
국가와 제약회사는 그동안 비가열 혈액제제를 통한 에이즈감염에 대한 인도적인 책임감을 밝히면서도 감염피해는 「무지의 결과」일뿐 의도적인 태만의 결과가 아님을 강조해 왔으나 이를 일축당했다.
이는 문제의 HIV약화가 사실상 인재였음을 간접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일본 언론들은 이 문제에 대한 추적보도를 통해 문제의 약화가 우연히 빚어진 불행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어쩌면 언론의 이같은 추적보도가 없었다면 「HIV소송」 자체가 불발할 수도 있었다.
혈우병환자의 에이즈 감염문제가 표면화한 것은 88년 2월 마이니치(매일)신문의 문제제기를 통해서였다. 후생성이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에이즈감염 실태」에 「남성동성애」등의 감염경로표시에 포함된 「응고인자제제」라는 낯선 표현이 계기였다.
「혈우병환자의 감염」이라고 분명히 표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후생성은 「집단감염사실이 알려지면 혈우병환자가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댔지만 은폐기도와 다름없는 것이었다.
행정당국의 이같은 「배려」로 혈우병환자들의 가족에게까지 에이즈가 감염되는 사태가 잇달았다. 이같은 사실관계의 보도는 에이즈에 감염된 혈우병환자의 분노와 동시에 잇단 소송의 계기가 됐었다.
「후생성은 83년 가열제제를 승인하고서도 비가열제제의 회수를 지시하지 않았다」 「일녹십자사등 혈액제제 업계에 후생성간부 출신들이 대량으로 낙하산인사로 들어앉았다」는 등의 사실이 확인돼 보도됐다.
결국 국가와 기업과 의사의 양심불량에 의해 확대된 문제는 법원이 대강의 틀을 마련한 협상테이블에 올려지게 됐다.
그러나 『당신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무고한 환자와 가족들의 절규는 길게 이어질 것이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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