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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사건에서 배우는 것(박승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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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사건에서 배우는 것(박승서 칼럼)

입력
1995.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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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의 재판」이라고 불리던 O J 심슨의 백인남녀 살해혐의사건은 1년 3개월만에 배심원 12명의 전원일치 무죄평결로 일단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사건은 미국사회 특유의 흑백인종갈등의 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더구나 그곳 LA에서 92년 흑인을 구타한 혐의로 기소된 백인경관이 배심원의 무죄평결로 인종폭동까지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면 그 불똥이 형사사법제도의 밖으로 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기회에 미국인들의 재판제도와 운영, 그리고 범죄사건재판에 대한 그들의 감각과 의식같은 것을 주의깊게 관찰하여 시사하는 바를 찾아야 한다. 요즈음 우리 언론은 심슨사건을 흥미있게 다루면서 미국의 형사재판은 배심 제도로 말미암아 크게 신뢰를 잃고 있다는 듯한 보도를 하고 있다. 그 나라의 형사재판의 대부분은 피고인측의 유죄답변제도와 그 소송당사자인 검사와 변호인 사이의 타협에 의해 종결되고 있지만 약 2백년전인 1787년에 제정된 미국연방헌법은 사법권을 규정하면서 「모든 범죄사건의 심리는 배심제에 의한다」고 했고, 그들 수정헌법은 「형사피고인은 공정한 배심에 의한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하여 배심제도야 말로 피고인이 불이익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와 더불어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하여 심슨도 법정에서 시종 묵비권을 행사하였다. 한 나라의 형사사법이 그 나라의 정치·경제·사회나 국민성, 윤리감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겠지만 우리는 이 재판과정을 보면서 우선 몇가지를 생각해본다.

 먼저 하나는 재판에 대한 국민참가의 문제이다. 피고인이 유죄답변을 아니하여 배심에 회부되는 사건은 불과 전체의 10% 전후라고 하지만 그 재판에 시민이 직접 참여한다는 점이다. 형사피고인의 운명이 직업법관에 맡겨져 버리고 국민은 아무 참여의식없이 재판에 대한 몰이해, 무관심상태에 있는 것에 비해 훨씬 민주적이고 사법의 관료화를 막을 뿐만 아니라 재판에 대한 국민의 두터운 신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미국의 배심제도에 개선점이 많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무섭게 변화하는 가치관과 복잡다기한 사회구성에 대응하는 법현상의 가변성과 동태성등을 염두에 두었을 때 재판을 전문직에게만 맡겨놓는 우리의 제도가 과연 옳은 것이며 정의로운 것이고 생명력있는 것인가를 반성해본다. 우리나라에도 근래 여러 방면에서 재판 이전의 절차로 조정, 중재등 분쟁해결제도를 두면서 전문인 이외에 소비자, 언론인, 학자, 시민운동가등을 참여시키는 경향이 늘고 있다. 그러나 유독 재판만은 예외가 되어 있는 까닭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그들의 적법절차 보장에 대한 확고한 신념의 문제이다. 그들은 누구도 불이익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 것이 국민되기 이전의 인간의 권리이며 이것이 인간의 문명화를 희구하는 투쟁상의 큰 이정표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권력의 남용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가진 그들은 그것을 봉쇄하는 수단으로 이 방법을 보장받아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사법의 기능이 인권의 보장보다는 처벌 쪽으로 기울어지고 개인의 인권보다는 국민 전체의 공동이익이 강조되어 치안을 우선시키는 반자유주의, 반인권보장적 사고가 팽배되어 있다. 그리하여 형사사건의 연출무대는 공개된 법정이 아니라 수사기관의 밀실이고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 하여도 케케묵은 실체적 진실주의의 이름아래 활개를 쳐서 피의자를 불러들여 이른바 「밤샘조사」라는 위법수사가 마치 정당한 것같이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혐의가 없다 하여 억류에서 풀려나면 「귀가조치」라는 은전을 받는 것같이 되어 버렸다.「사법처리」라는 신조어는 반드시 구속수사와 구속기소를 뜻하며 남의 초상권이야 아랑곳없이 양 팔을 붙잡혀 구치소로 끌려가는 사진이 TV나 신문에 크게 실려야 하고 형사공판이란 수사기관이 공판정 밖에서 비밀히 만들어 내놓은 조서의 확인평가절차에 지나지 않는 기형적 현상이 바로 우리의 실태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형사피고인을 바라보는 시민의 시각이다. 분명히 우리의  헌법에는 모든 형사피고인은 재판이 유죄로 확정될 때까지 무죄의 추정을 받는다고 하였고 우리가 90년 7월에 가입한 국제연합 인권규약에도 형사피고인의 무죄추정권이 규정되어 있건만 우리의 현실은 수사기관에 구속이 되면 바로 죄인이고 죄수가 되어 만인으로부터 매도당하며 재판의 결과 따위에는 관심이 적다.

 형사재판제도가 그 나라의 역사나 전통적 풍토와 밀접하게 관계된다고 하지만 지난 날의 낡은 의식을 청산하고 새로운 자유민주시대의 문명된 국민이 되려면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을 유심히 살펴서 옳은 방향으로 빨리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흑인 한 사람의 사건을 바라보면서 부러워해야 하는 우리의 오늘이 서글프기만 하다.<변호사·전대한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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