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동포애” “북변화 전제” 의견 엇갈려/북측 「남한당국 배제」 노선 고집이 장애분단 50주년인 올해 북한은 사상최악의 수해를 입었다. 북한방송들은 이를 『1백년만의 무더기 비』라고 말했다. 「50년」「1백년」은 모두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시사하는 숫자다. 그렇다면 이번 자연재해가 남북관계, 더 나아가 민족의 통일을 향한 하나의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최저기준 이하의 생활로 전락한 북녘의 동포들을 돕는 것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당위이다. 따라서 북한의 수해 지원문제에 대한 찬반양론은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내부에서 다른 의견들이 맞서고 있는 것은 북한에 대한 지원이 두 가지의 상충된 목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앞서 거론한 것과 같은 순수한 동포애적 목적이다. 이같은 차원에서 시민·종교단체들은 이미 북한주민을 돕기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북측을 도움으로써 일정한 정책적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이 경우 대북지원의 목적은 곧 북한당국의 정책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수해 복구지원이 곧 남북 당국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개선으로 이어진다면 이를 주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북한측은 당분간 「남한당국의 배제」라는 기본노선을 바꿀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이는 7일 마감되는 1차 쌀지원과정에서 철저하게 확인됐다.
결국 현단계에서 동포애와 정책이익은 서로 모순되고 우리는 두가지 목적중 한가지를 버려야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입은 피해정도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지난 8월28일 북측의 첫 수해발표, 지난달 12일 유엔 합동조사단의 보고등에 의하면 피해규모는 전국토의 75%, 이재민 5백20만명, 곡물피해 1백90만톤으로 북한당국의 수습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것이다. 반면 통일원과 안기부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피해지역 30만㏊, 이재민 50만명 미만, 곡물피해 10만∼15만톤으로 보고, 피해를 10분의 1정도로 축소평가했다.
지난 30일 끝난 제3차 베이징(북경)회담에서 북측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포들의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북한당국을 더 막다른 골목끝으로 몰아가야 하는가. 그럴 경우 과연 기대대로 북한의 정책노선이 바뀔 것인가.
이번 수해지원 문제는 1백년만의 폭우를 천재로만 치부하든지, 또는 통일을 앞당기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든지 택일하라는 시험과도 같다.<유승우 기자>유승우>
◎적극론/이종석씨 세종연구소 연구위원/“대북정책 자신감·여유갖고 일 지진때 수준 지원하되 추가지원은 공식요청 유도를”
북한 스스로가 1백년만의 대홍수라고 밝힌 수해가 지난 여름 북한지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피해상황을 조사한 유엔의 보고서를 보더라도 이번 수재가 엄청난 규모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수재때문에 우리사회에서는 정부차원의 지원문제를 둘러싸고 논의가 분분하다. 지금 이 문제와 관련해서 북한의 공식요청이 없는 한 한푼도 지원할 수 없다는 주장에서 인도주의적이며 동포애적 차원에서 무조건 대규모 지원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조금은 혼란스럽게 보여지는 이 논의에서 우리가 어느 한 입장에 서기전에 먼저 정리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북한수재를 지원하는 이유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 수재를 지원하는 데는 두가지 차원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인도주의적 차원이며 또 다른 하나는 대북정책의 차원이다. 여기서 순수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원은 대북정책과 직접 연계되지 않은 우리의 동포애적 순수성에 기초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직접적인 지원요청과 상관없이 제공될 수 있는 이 지원금액을 정부는 200만달러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아마 그정도의 액수라면 일본 고베 지진때의 경우나 84년 남한수재 때 북한의 지원등을 고려할 때 적절한 액수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동포인 북한에 우리가 고베 지진때보다도 적은 액수를 지원한다면 아무래도 그 자체가 의도적이라고 비난받을 소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추가 지원은 인도주의와는 다른 차원의 성격을 지닌다. 그것은 대북협상전략적 차원이 깊이 고려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의 기본전제는 북한의 공식 요청이 있을때만 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례적인 지원을 넘어서는 추가지원에 당사자의 요청이 있어야 함은 기본 상식이다. 이 상식은 남북한이 상황변화에 따른 남북관계의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지금 남북관계는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 그 규칙의 핵심은 협상의 상식이 통하는 관계의 정립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남쪽은 북쪽이 솔직하게 자신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지원을 요청하도록 간접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부에 몇가지 새로운 자세가 요구된다고 본다. 먼저 정부가 대북문제에서 자신감과 여유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크건 작건 상관없이 북한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남북관계와 연결시키는 좁은 시야나 조바심은 삼가해야 할 것 같다. 이와 함께 우리가 북한을 흡수통일할 의사가 없음을 실천으로 보여줄 필요도 있다. 북한은 지금 남쪽의 어떤 지원도 화평연섭식의 체제붕괴 기도로 보고 있다.
북한은 정부가 대내적으로 정부 이외의 대북관계를 차단하고 대외적으로 우방과 북한과의 접촉을 정부간 남북관계의 진전과 연계시키는 현재의 정책도 흡수통일정책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있다.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정책이 오히려 남북관계를 경직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대외문제나 대북문제에서 남북관계 진전과 연계시킬 것과 시키지 않을 것을 잘 구분하는 일이야말로 이 시점에서 정부가 성과있는 대북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 해야할 중요한 과제가 아닐수 없다.
◎소극론/유흥수 의원 민자당 정책조정위원장/“우성호 송환 해결못한채 저자세 대북 지원은 곤란 우리 수재민·어민감정 고려를”
북한은 유엔을 통해 수재지원을 호소하고 심지어는 수교관계조차 없는 미국 일본 타이완에까지 수해지원을 요청하면서도 우리정부에는 지원요청을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지난번 쌀지원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 쌀지원을 요청하면서도 우리정부에는 공식적으로 아무런 요청도 하지 않았다.
더욱이 우리정부는 쌀의 원산지 표시도 하지 않고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은채 15만톤을 지원해 주었다.
그러나 이때 북한이 우리정부에 대해 취한 조치는 무엇이었던가. 우리쌀을 실은 배에 인공기를 게양하고 우리선원을 강제로 억류한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북한측은 『일본이 쌀을 보내겠다니까 마치 서해 망둥이가 뛰니 빗자루도 뛴다는 식으로 남측이 자기들도 보내겠다고 한 것』이라는 망언조차 서슴지 않았다.
우리의 쌀지원은 인도적인 차원, 나아가 동포애에 입각해 아무런 조건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쌀의 추가지원만 요구할 뿐 당연히 돌려보내야할 우성호의 송환에 대한 논의조차 꺼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남북화해 차원에서 이인모 노인을 조건없이 송환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에는 우성호선원들을 비롯해 약 4백50명에 달하는 우리 국민이 강제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중 대부분은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에 수재지원을 해야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국민이 정부의 수재지원을 바라는가부터 따져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노(NO)」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현시점에서의 국민정서와 감정은 정부당국이 북한에 수해지원을 해주어야 한다는 쪽은 아닌 것 같다.
북한에 대한 우리국민의 감정은 상당히 격앙되어 있다. 북한에 대한 불신도 깊다. 일부 국민은 북한에 지원한 쌀이 주민들에게 공급되지 않고 군용미로 전용될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고있다.
더구나 우리측의 수재도 보통이 아니며 이에 대한 충분한 보상책도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남해적조로 인한 어민피해도 심각하다. 북한의 수재지원에 앞서 우리 농민, 우리 어민의 피해부터 걱정하고 보상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
진실로 북한이 우리의 지원을 원한다면 북한당국이 정확하게 수재상황을 공표하고 동포애적인 차원에서 우리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면 북한 주민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우리 정부는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 국민도 절대 반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수재지원에 앞서 반드시 해결해야할 몇가지 과제가 있다. 먼저 우성호송환이 이뤄져야 한다. 안승운 목사사건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도 뒤따라야 한다. 북한에 강제납북되었거나 억류된 4백50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생사여부라도 그 가족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우리의 선결과제들이 수재지원을 위한 전제조건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제 더이상 저자세이고 굴욕적인 대북정책은 그만 하자는 것이다. 북한당국의 공식적인 요청이 없다고 해도 인도적인 차원의 민간지원은 당연히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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