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음악열정 대중가슴 깊숙이/재기곡 「나 하나의 사람은 가고」 거친인생 반영임희숙(45)의 목소리는 듣는 이를 감싸 안는다. 그의 노래는 귀가 아닌 넋을 파고 드는 듯하다.
「솔(SOUL)」이라는 음악 장르는 초콜릿처럼 짙고 감미로운 흑인의 목소리에만 조화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밴듯한 그의 목소리와도 잘 어울린다.
그는 음악을 시작한 이후 활동이 끊어지기도 했고 뚜렷하게 그 시대를 풍미한 히트곡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뜨거운 가창력의 소유자인 그는 우리 가요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다.
덕성여고 2학년 때인 1966년, 임희숙은 동아방송 전파를 통해 팝송을 부르면서 데뷔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1년을 다니고서는 노래를 위해 학교를 그만뒀다. 69년 <그토록 사랑했던 그사람 잃어 버리고 …> 로 시작되는 「진정 난 몰랐네」와 「돌아와 주오」등 「이별 노래」를 연속 히트시키며 주목받는 가수로 떠올랐다. 그토록>
그러나 인기의 상승과 함께 불행도 끊이지 않았다. 74, 75년 잇따른 결혼에서의 실패, 대마초 사건으로 인한 가수활동 금지, 척추 디스크 등.
『사람이 모질지 못했죠. 워낙 운명이 거칠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나 자신이 똑똑하지 못했던게 가장 큰 원인이었어요』
84년 병마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그때부터 사랑이 아닌 삶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 바람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엔 살빛 낮달이 슬퍼라 오래도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너를>
재기곡이자 대표곡인 「나 하나의 사람은 가고」는 시인이자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백창우가 만든 곡. 당시 27세의 청년이었던 그는 곡을 안쓸 때 월부책을 팔러 다녀야 했다. 그의 고단한 삶과 임희숙의 아픈 과거가 어우러진 이 노래는 호소력있는 가창력에 힘입어 많은 이의 슬픔과 기쁨을 어루만졌다.
재기 후 임희숙은 인기의 표면에까지 떠오르지는 못했지만 끊임없이 노래를 불러왔다. 이제 그에게 음악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또한 식어버리는 열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차분히 호흡해야 하는 삶과도 같다.
『과거를 돌아보면 자신이 대견스러울 때도 있어요. 그 고통 속에서 다시 살아나 노래를 부르고, 또 저를 사랑해주는 대중이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복이 많은 여자 같아요』<권오현 기자>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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