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00억마르크 쏟아부어 500개 SOC사업 박차/사기업도 50만개 생겨 삶의질 구서독수준 육박/삭막하던 베를린장벽 사라지고 예술향기 그득독일의 옛 서베를린지역 번화가인 쿠르퓌르슈텐담 거리의 「포피스 에스티아토리오」레스토랑. 격조높은 분위기로 지난 10여년간 예술가 정치인 기업인들이 즐겨찾던 명소다. 그러나 레스토랑 주인인 폰티니 아크리타키스는 최근 이 레스토랑을 구 동베를린지역으로 이전키로 결정했다.
95년 10월 3일의 동베를린은 동서독이 통일의 첫발을 내디딘 5년전 그날에 비해 엄청나게 달라졌다. 베를린 시청사는 이미 3년전 동베를린의 미테구역으로 옮겨졌다. 베를린장벽 붕괴전 민중시위가 거세었던 프란츠라우어베르크 거리와 콜비츠 광장은 이제 카페와 화랑, 간이주점들이 들어선 예술의 향기가 그윽한 거리로 변모했다.
지난 5년간 계속된 베를린의 개조작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건물과 도로등 을 새로 건설하고 정비하기 위한 레미콘차량들이 시가지를 쳇바퀴처럼 오가고 하늘에서는 철근자재를 나르는 대형 크레인 철탑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땅을 파는 요란한 굉음들과 모래먼지가 때론 짜증스러울 정도이다. 베를린시에서 현재 진행중인 크고 작은 공사는 8백건이상이다. 한마디로 도시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건설현장이다.
베를린시는 통일독일 5년의 변화를 상징하는 편린에 지나지 않는다. 구동독 전역에서 이와같은 건설과 르네상스의 물결이 일고 있다. 통일당시 피폐할대로 피폐했던 구동독지역의 사회기반시설은 눈부시게 재건되고 있다. 주요 고속도로들은 왕복 6차선으로 확대됐고 동독지역의 모든 철도노선은 전철화가 완료됐다. 하노버와 베를린을 잇는 기존 노선은 고속전철이 달릴 수 있도록 공사가 진행중이다. 이같은 사업들은 연방정부가 구동독의 교통망 확충을 위해 지난 91년 확정한 17개 주요 프로젝트에 따른 것으로 여기에는 2012년까지 총 6백75억마르크가 투입될 예정이다.
산업시설에도 대수술이 가해져 구 국영기업 1만2천개중 3천7백여개가 폐쇄됐고 나머지는 대부분 민영화됐다. 그동안 구동독지역에서 50만여개의 사기업이 새로 생겨나 경제활성화를 크게 자극하고 있다. 연방정부가 이같이 각종 사회기반시설 현대화를 위해 시행중인 대형 재건사업은 총 5백개에 이르며 98년이면 대부분 끝나게 된다.
구동독지역 주민들의 소득과 생활수준도 따라서 전반적으로 크게 향상됐다.독일 할르경제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구동독지역의 월 평균임금은 2천44마르크로 5년새 갑절이 됐다. 구서독지역의 평균임금 2천6백87마르크의 76%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승용차 보유도 구서독지역을 맹추격, 구서독의 2.0명당 한대꼴에 약간 못미치는 2.3명당 한대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구서독수준에 근접하는 VTR 퍼스컴등 생활전자용품의 보급과 현대화한 주거시설및 근로환경의 개선등 구동독주민의 생활의 질은 통일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됐다. 지난 5년간 구동독지역의 이러한 급격한 발전은 연방정부가 재정이전형태로 총 6천2백30억마르크라는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베를린=송태권 특파원>베를린=송태권>
◎통독,그래도 숙제는 남아 있다/성급한 화폐통합 결정적 실수/설비노후·제도불안정 투자 막아/임금폭등·민영화 저조 등도 한몫
통일후 구동독의 경제환경은 전체적으로 보면 통일전보다 향상되고 있지만 구동독주민 개개인에게는 적응에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간에 명암이 뚜렷하게 교차하고 있다.
그러나 90년 10월 통일당시에는 독일국민은 통일이 가져올 문제보다는 「라인강의 기적」이 다시 도래할 것이라는 장미빛 미래를 기대했었다. 그들은 이같은 낙관론이 통독 5년뒤인 지금 너무 성급했음을 체감하고 있다.
90∼94년 5년간 구동독재건비용으로 독일정부가 쏟아부은 돈은 무려 6천2백30억마르크. 이는 독일이 4년동안 거둔 국내총생산(GDP) 증가분의 80%를 차지하는 액수다. 그럼에도 경제통합은 아직 요원하다. 결국 독일통일에는 몇가지 계산착오가 있었던 것이다.
첫째로 들수 있는 오산은 성급한 통화통합. 통일 3개월전인 90년7월에 이루어졌던 통화통합은 대외적인 과시효과는 있었을지 몰라도 동독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독일은 통화통합이 구동독경제를 시장경제로 이행시켜 구동독의 잠재적인 생산성을 높이고 임금이 낮은 구동독에 투자가 촉진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시장경제로 편입된 구동독경제는 지지부진했다. 많은 기업이 생산을 중지했는데 특히 제조업의 경우 공장가동률은 통독전의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또 통독후 쏟아지리라 예상했던 구동독지역에의 투자도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 구동독의 생산설비중 90%가 교체돼야 할 만큼 노후화한 상태였고 이들 시설을 구서독의 생산시설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연간 2천3백억마르크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94년까지 구동독에 투자된 자금의 40%가 정부조달 자금이리만큼 민간차원에서의 투자는 기대치보다 훨씬 밑돌았다. 구동독의 사회간접자본 미비와 토지소유권의 불안정등이 서방의 투자에 발목을 잡은 것이다.
독일정부의 또다른 오산은 구동독재건비용의 조달방안이다. 독일은 8천개에 달하는 구동독의 국영기업을 매각해 민영화시키면 1조5천억마르크의 매각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90년 하반기에는 이들 기업들의 자산평가가 6천억마르크로 떨어졌으며 실제 매각대금은 6백70억마르크에 불과했다. 통독시점에서의 가치보다 20분의1 이하 였다.
통화통합이후 일어난 임금의 대폭적인 상승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구동독의 낮은 임금이 구동독에의 투자를 촉진시킬 것이라는 기대도 역시 계산착오였다. 통독시점에서 구서독임금의 30%에 불과했던 구동독지역의 임금은 91년에는 60%정도로 뛰어올랐다. 구동독지역의 임금상승은 구동독 주민들의 대량실업상태로 몰아갔다. 구동독지역의 노동인구 7백40만명중 1백만명이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다.
구동독의 실업으로 인해 구동독에 대한 투자비용의 3분의 2가 생산보다 실업수당등 소비분야에 사용되고 있다.
아직도 통일된 독일에는 이같은 시행착오로 인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독일연방은행은 통일독일이 이같은 혼란을 극복하고 경제적으로 동서독이 동일선상에 서게 되는 시점을 2010년으로 잡고 있다. 구동독이 2000년에 1인당 GDP면에서 구서독의 50%수준까지, 2010년에야 구서독과 같은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조희제 기자>조희제>
◎옛 동독여성,통일 최대 희생자/실직에 육아책임까지 이중고
독일통일의 최대희생자는 구동독지역의 여성들이다. 과거 동독시절 여성들은 생산성이야 낮았지만 원하면 누구든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아동보호도 정부에서 완벽하게 해주었다. 91년까지만 하더라도 25∼34세의 구동독지역 여성중 97%가 직장에 다녔다. 지금은 그 숫자가 60%에 지나지 않는다. 구동독지역의 실업률이 공식발표로는 13.9%이나 실제로는 25%에 이르고 있다. 구동독여성 전체로는 5명중 4명이 직장을 잃었다. 여성들의 실직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여성들은 직장을 잃은 대신 가사와 육아의 책임을 떠안게됐다. 그결과 통일이후 여성의 출산율은 90년의 60%로 떨어졌다.<권대익 기자>권대익>
◎동부독일 투자유치위해 방한 펠트룹씨/“재건비용 엄청나 독정부 홀로감당 벅차 「독일식」보다 한국에맞는 통일모델 찾길”
지난달말 동부독일지역에 대한 한국기업의 투자유치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독일 연방정부 경제성의 동부지역재건단장인 베르나르트 펠트룹국장(50).
한국에까지 와서 투자를 유치해야할 정도로 통일독일은 여러가지 후유증을 앓고 있다. 정치통일은 이루었지만 경제통일은 여전히 먼 과제임을 엿볼수 있게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요즘 동부독일의 경제상태는.
『역동적인 성장을 이뤄가고 있다. 통일당시에비해 50만개의 새로운 공장이 세워졌다. 5년전 통일당시 서부지역에비해 30%에 불과했던 동부지역의 생산성이 지금은 60%이상, 소득도 40%에서 75%로 올랐다. 동부독일은 전체 독일영토의 25%, 전체인구의19%를 차지하고 있으나 GNP는 전체의 11%에 불과하다. 아직 한참 더 발전해야한다』
―경제강국인 독일이 한국의 기업에대해 투자를 요청할 만큼 경제통일이 어려운 과제인가.
『독일정부는 이미 6천억 도이치마르크를 동부지역재건에 투자했지만 아직 3천억마르크가 더 소요된다고 보고 있다. 외국기업 유치노력은 독일정부가 모두 감당하기에 벅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부지역의 경제를 국제화한다는 의미도 있다』
―외국기업이 동부독일지역에 투자할 경우 어떤 혜택이 주어지나.
『주요한 인센티브가 3가지인데 세금면제,특별감가상각, 지방정부지원금등 만으로도 투자금의 35∼40%는 커버된다』
―동서지역 주민간의 갈등은 많이 해소 되었나.
『갈등은 통일방법론상의 문제이지 통일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서부지역 사람들은 세금부담이 늘어난 것에, 동부사람들은 지위와 직업의 상실 등 너무나 급격하고 많은 변화에 불만을 가져왔다. 정치인들이 성급하게 통일의 완성을 약속한 것도 불만을 키운 원인이었다』
―한국의 통일문제에대해 견해가 있다면.
『독일모델은 안된다. 독일은 「빅뱅」식으로 통일했는데 이는 정치적으론 통일을 이루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담을 쌓을 우려가 있다. 독일의 경험을 참고해서 한국에 맞는 모델을 발견해야 할것이다』<권대익 기자>권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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