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에 접한 감동 세월갈수록 더욱 깊은뜻 새록일제시대에 독어나 독문학을 전공한 한국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해방이 되어 독일어선생이 여러 사람 필요하게 되었을 때 그 일을 맡은 것은 주로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도 어느 의과대학 예과에서 독일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철학도가 만든 교과서를 사용했던 것인데 그 교과서에 헤르만 헤세의 「안개 속에서(IM NEBEL)」가 들어 있었다.
소년시절에 나는 다정다감한 기질이었고 나의 감상주의는 청년기에까지 이어졌다. 헤세의 「안개 속에서」를 처음 만났을 때 어쩌면 내 심정을 이토록 정확하게, 그리고 이토록 아름답게 노래한 사람이 있는가 싶어서 깊은 감격에 젖었다.
그 당시 내 나이는 30대 초반이었고 헤세의 시에 대한 나의 이해는 내 정신연령의 수준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헤세가 「안개 속에서」를 통하여 그의 개인적인 고독을 표현한 것으로만 이해하였고 그것이 현대인 전체의 고독한 모습을 거시적으로 묘사한 문명비판의 뜻을 함축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 나이 40고개에 올라섰던 1960년에 나는 「정열·고독·운명」이라는 제목으로 원고지 80장 가까운 긴 수필을 쓴 적이 있었다. 두 통의 편지를 연결한 형식을 취한 장편수필이었다. 내가 20대의 「젊은이」로 돌아가서 중년기에 접어든 나에게 보낸 편지에 대해서 중년기의 내가 회답을 보내는 형식을 취한 것이었다. 이 수필에서 「젊은이」는 헤세의 「안개 속에서」를 언급하면서 고독의 문제를 제기하였고, 중년기의 나는 고독의 문제를 다정다감한 성격과 관련지어가며 위로와 격려의 회답을 보냈다. 그 때까지도 헤세의 시에 대한 나의 이해는 개인적 관심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사실을 고백하면, 그 장편수필을 쓰게 된 동기 자체가 당시 내가 안고 있던 개인적 심정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에게 한때 가까이 다가왔다가 멀리 떠나간 사람이 있었고, 10년이 지난 뒤에도 나는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바로 그러한 심정을 서간문의 형식을 빌려서 표현한 것이 그 장편수필이었다.
그 뒤로 다시 30여년이 흐른 지금 나는 고독을 다정다감한 청소년기심리에서 연유한 일부 사람들만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특히 현대인은 본인이 그것을 느끼든 느끼지 않든 모두가 고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헤세가 「안개 속에서」를 통하여 말하고 싶었던 것도 현대인 모두가 겪고 있는 보편적 고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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