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자동차협상이 끝났다. 대형차에 대한 자동차세를 미국의 요구대로 인하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번 협상의 결과에 대해 통상당국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대형 자동차에 대한 세금을 내리는 것만으로 우리상품에 대한 무차별적 수입규제로 연결될 수 있는 우선협상관행대상(PFCP) 지정을 면하게 됐다는 점에서 그런 자체 평가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 협상의 과정과 결과를 들여다보면 과거의 한미통상협상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일방적 문제제기에 우리가 별 힘도 써보지 못하고 손을 들어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상대방의 현실과 입장은 아예 무시한채 자신들의 논리만 내세운 미국의 협상태도는 과거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주는 만큼 받는 것이 있어야하는 것이 협상인데도 이번 역시 과거처럼 우리만 주고 미국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받아낸 것이 없어 보인다.
PFCP지정을 면해, 다른 상품의 대미수출이 영향을 받지 않게 됐다지만 수년째 계속되는 대미무역적자가 이번 협상으로 반드시 줄어들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때문에 이번 협상도 협상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위협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고 극단적인 표현으로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협상의 결과에 대해서도 타결이라는 용어대신 「굴복」으로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솔직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타결이든 굴복이든 이번 협상결과는 우리에게 만만치 않은 후유증을 안겨주고 있다. 안그래도 미어터지는 도로에 대형차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고 일부층의 무분별한 과소비도 다시 걱정해야할 판이다. 우리가 대형차에 비해 소형차의 세금을 비교적 낮게 유지해온 근거는 에너지를 전량 수입해야 하는 실정에서 소형차보급을 유도하면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좁은 국토와 도로여건을 보더라도 대형차보다는 소형차가 더 필요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작은 차의 보급을 더 늘리기위해 경승용차의 기준을 8백㏄이하로 하느냐, 1천㏄이하로 하느냐는 치열한 논란을 벌이다 결국 8백㏄이하로 결정한 것이 불과 얼마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의 요구로 소형차의 세금은 그대로 두고 2천5백㏄이상 대형차의 세금만을 내리기로 함에 따라 소형차를 더 많이 이용해야한다는 주장은 전과 같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워졌다.
이때문에 이번 협상과 관련, 또 다른 측면에서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며칠전의 세제개편에서 금융종합과세제도를 강화하는 대신 중산층을 위한다는 구실로 세율을 낮춘 결과 연소득 4천만원이상인 사람들만 덕을 보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을 때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된 것처럼 이번 한미자동차협상도 「가진 사람에게만 유리한 결과」를 가져와 「정부가 하는 일이 어찌 매번 이 모양이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게 됐다.
문제는 미국의 개방압력이 이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산물 의료기기 금융등 숱한 통상현안이 남아있으며 자동차문제도 계속 「관심 대상국」으로 분류돼 언제 다시 불거져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사실상 무한대에 가까운 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미국과의 협상은 현재로 봐서는 언제나 이번과 같은 결과가 되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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